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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30. 2021

가성비에서 해방되는 날이 올까?

내 발목을 잡는 가성비의 늪


며칠째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쇼핑몰, 백화점, 베이커리, 파티용품점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했다. 알파벳과 숫자가 복잡하게 섞인 제품코드를 그대로 복사해  사이트의 가격을 비교했다. 최종 후보가  개로 추려졌고, 그중에서 후기와 별점이 높은 곳을 택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산을 하나 뛰어넘은 기분이다.    마음속을 짓누르는 어려운 숙제 같은 <To Do List>  여러 항목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중이다. 하나씩 클리어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가슴 한쪽에서 찝찝한 질문이 불쑥 올라왔다.      


과연 나란 인간에게
가성비에서 해방되는 날이 올까?     

곧 있을 엄마의 칠순을 앞두고 부쩍 카드 긁는 일이 많아졌다. 사 남매는 역할을 나눠 준비 중이다. 각자 선물은 물론 생신상에 올릴 케이크와 음식, 옷, 미용실 예약까지 꼼꼼히 신경 써서 준비하고 있다. 쇼핑 요정과 거리가 먼 나는 평소라면 감히 들여다보지 않았을 브랜드와 제품 사이에서 좋은 선택, 아니 덜 나쁜 선택을 하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고심 중이다. 오롯이 내 돈이었다면 그나마 내키는 대로 했겠지만 ’ 대리 구매 요정‘이 됐기 때문에 그 어느 때 보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결제한다. 구경하는 건 좋아하지만 실제로 구매하는 데에는 주저하는 편이라서일까? 쇼핑몰을 돌며 뭐라도 더 좋은 상품을 고르기 위해 별점과 구매자 후기를 뒤진다. 같은 제품번호를 달고 있더라도 조금 더 저렴한 상품을 찾기 위해 쿠폰을 먹여(?) 가며 가격 비교를 한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다가 문득 ’ 현타‘가 밀려온다.

      

남들은 쉽게 척척 좋은 물건을 고르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도무지 쉽지 않다. 그냥 마음에 들면 과감하게 카드를 긁은 적이 없다. 카드를 긁고 후련한 적이 없다. 무언가 하나 사기 위해서는 질, 디자인, 가격, 활용도, 무이자 할부, 배송 일정 등 체크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 가성비‘다. 무조건 비싼 게 옳다고 생각하거나 무조건 가격이 싼 걸 고르는 편은 아니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을 때, 나는 쇼핑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어느 하나 넉넉한 게 없었던 내 인생에서 ’ 가성비‘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쇼핑할 때는 물론,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 장소를 고를 때도, 여행할 때도,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도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 가성비‘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 비용 등 투자 대비 결과가 어떤지에 따라 만족도가 캄캄한 지하로 처박히기도 하고, 구름 위로 두둥실 떠 오르기도 한다.     


이 지독한 가성비 사랑은 기묘한 취향으로 굳어졌다. 돈가스집에서 등심 돈가스와 생선가스가 한 접시에 오는 모둠 돈가스를 택하거나, 양면으로 다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reversible) 아이템이나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오일처럼 멀티 아이템을 좋아한다. 휴양과 관광이 적절히 섞인 여행지를 택하고, 정장에도 캐주얼에도 어울리는 심플한 스니커즈를 선택한다. 가방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지갑의 부담 역시 줄여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문제는 뭐라도 하나 걸리겠지 하는 ’ 뷔페식 선택’이 삶 속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이다. 일을 할 때도 내 선택이 옳다는 확신은 희미하고, 상대방에게 선택의 공을 넘긴다. A, B, C 최소 3개의 선택지를 주고 그들이 택하게 만든다. 가성비를 좋아하는 인간은 가성비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더 머릴 굴리고, 몸을 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는 못해도 최소 평타는 치는 인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나라도 확실히 잘하면 좋겠지만 그럴 확신이 없으니 까탈 부리지 않고 무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뾰족함을 숨기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숨긴다고 100% 숨겨지지 않는 게 문제지만) 생선가스가 맛이 없어도 등심 돈가스가 맛이 있으면 모둠 돈가스가 실패한 선택이 아닌 것처럼. A와 B가 틀려도 C가 맞으면 나는 최소 삼진 아웃은 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얼마나 얍삽하고 비겁한 논리인가? 이게 바로 가성비 지향형 인간이 사는 방식이다.    


가성비에서 해방되는 날을 꿈 꾼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게 답이겠지만 그건 로또 1등 당첨이 돼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 일단 접어두자. 로또 당첨보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게 쉬울 테니 마음을 다잡는다.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라도 얻어걸리기 바라는 무책임한 자세 말고, 내 선택에 확신을 갖자 다짐한다. 남들이 보기에 좀 의아한 선택이라도 내게는 후회 없는 최선의 선택이 분명 있을 테니까. 망한 선택도 100% 손해 보는 선택은 없으니까. 어떤 결정이든 결과와 1+1 상품처럼 따라오는 ‘메시지’는 나를 좀 더 단단한 미래로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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