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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03. 2021

일단 하고, 계속하는 게 '힘'

요가 6개월 차 요린이의 중간 점검


오랜만에 친한 후배를 만났다. 각자 살기 바빠 정신없이 보내다 지난겨울, 두꺼운 패딩을 입고 만났던 우리가 이른 가을 장맛비가 내리던 날 다시 만났다. 즉석 떡볶이와 딸기 생크림 케이크로 이어지는 나의 최애 코스를 함께 하며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생존 보고를 했다.  

    

지난번 만날 때 보다 후배에게서는 한층 생기가 느껴졌다. 여전히 일에서는 신경을 거스르는 존재 투성이고, 줄줄이 딸린 후배의 후배들을 이끄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괴로움에 몸서리치지 않는다. 일과 덕질의 밸런스를 적절히 맞춰 살아가는 현명한 21세기 현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난 바쁜 시기를 한바탕 마무리하고, 다시 일의 파도가 몰려오기 전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다. 얼굴을 보지 못했던 봄과 여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수다스럽게 브리핑하던 나를 빤히 보던 후배가 말했다.     


선배, 뭔가... 달라졌는데요? 뭐지?     


응? 뭘까? 예전이랑 똑같은데... 일하고, 먹고, 자고.      


아닌데... 뭐가 있는데... 요즘 뭐 해요?      


뭐지? 겨울이랑 다른 거? 아. 요가 시작했어. 이제 곧 6개월 차야.      


어쩐지 자세가 당당해졌어요. 쇄골도 반듯하고, 목도 길어진 거 같고.     


어 정말? 그게 보여? 난 매일 거울 봐도 모르겠던데.     


선배, 자세가 어떻게 보여요.

본인은 몰라요. 전신 거울에는 다 안 담기니까.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보면서도 몰랐다. 거리를 걷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체크할 때도, 산책할 때 그림자를 볼 때도 느끼지 못했다. 일주일에 3번 요가 수업을 듣고, 그때 배운 동작을 이용해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스트레칭한다. 그 사소한 시간이 쌓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전  보다) 당당한 자세를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만들어지고 있다.      


특별한 목표가 있어서 시작한 요가는 아니었다. 나 같이 생각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비우기에 요가가 좋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지난 봄,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날에 충동적으로 요가 수강권을 결제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소비였다. 늘 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태생이 겁보라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년간의 다짐보다 순간의 분노가 힘이 더 셌다. 호흡이나 명상을 하니까 성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그 영향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건 ‘이 자세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목표 의식을 가장한 탐욕이다. 외우기도 힘든 이름만큼이나 어려운 자세를 따라 해 보겠다고 몸을 꼬고 구기는데 집중하다 보니 점점 잡생각이 사라졌다. 그 재미에 빠져 다행히 지금껏 꾸준히 요가를 하는 중이다. 스테로이드 약물처럼 단기간에 근육이 생기는 효과를 볼 순 없지만, 차근차근 시간을 쌓으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휜 뼈가 펴지고, 근육이 차오른다. 굽은 자세가 서서히 반듯해지는 미묘한 변화들이 생긴다. 나는 매일 습관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몰랐지만 오랜만에 본 사람들의 눈에는 그게 보인다.     


왜 이렇게 빨리 실력이 늘지 않을까? 지금 보다 더 요가 햇병아리 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다. 고꾸라지고,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에는 곡소리가 주제가처럼 흘러나왔다.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이 미웠다. 지구에서 제일가는 못난이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클래스에 있는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수년 째 수련 중인 분들이었다. 그들의 공력을 며칠 만에 따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양심도 없이 매일이 쌓인 결과를 며칠 만에 따라잡으려고 하다니 어리석었다.      


얼마 전, 시간표를 확인하러 요가원 SNS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매일 수강 현장을 담은 스케치성 사진이 올라오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내가 갔던 날짜의 포스팅을 클릭했다. 질서 정연한 자세로 수업에 몰두한 회원들 사이,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은 블러 처리되어 있지만 알 수 있다. 그날의 복장, 그날의 자세만으로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어깨와 골반을 집중적으로 늘려주는 스트레칭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주문으로는 하늘에서 누가 팔을 잡아당겨, 팔이 뽑힐 것 같은 기분으로 쭉 펴라고 했다. 전생부터 쌓아 온 억겁의 죄를 반성하듯 팔을 쭉 펴 올린 내 뒷모습에는 잔잔한 등근육이 잡힌 게 보였다. '아 이런 모습이구나.' 뒤에서 보면 이런 상태구나. 그제야 알게 됐다. 이게 얼마나 바뀔까 싶었던 지난 시간들이 쌓여 등근육으로 남았다. 반듯한 자세로 돌아왔다. 일단 하고, 계속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에 남았다.       


8개월 치를 한꺼번에 계산하면 파격 할인을 해 준다는 이벤트 소식에 얼마 전 통 크게 질렀다. 8개월이 지난 그때,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중간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날은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그만두는 날까지 하루하루 게으름 피우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난 계속할 거라는 사실이다. 요가든, 산책이든, 글쓰기든 뭐가 됐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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