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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27. 2021

자,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오징어 게임>

프로 도망러가 다시 책 82피플이되었습니다


"어머? 대단하다 너.

뻔뻔하게 직접 홍보를 다 하고."


지난해, 생애 첫 책을 출간하고 홍보에 열을 올릴 때였다. 친한 사무실 동료들에게 나를 ’ 애정‘한다면 구매력으로 증명해 달라고 농담 섞인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날들을 사는 사람들에게 출간 소식은 결이 다른 ’이벤트’였다. 다들 자기 일처럼 팔을 걷고 홍보 요원을 자처했다. 당분간 모든 선물은 이 책으로 하라고, 다단계 모드로 적극 임하라고 서로를 독려했다. 목표를 설정하고, 할당량을 나누고, 틈틈이 각자 사는 지역 서점의 상황을 공유하라는 미션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들이 신이 나서. 나는 그저 판을 깔았을 뿐, 불은 스스로들 타올랐다. 그것도 활활. 흥 터진 이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던 선배가 던진 그 말에 순간 난 얼굴이 삶은 오징어처럼 시뻘게졌다. 내가 오징어가 되든, 오징어 짬뽕이 되든 상관없다는 듯 선배는 말을 이었다.  

    

“나도 책을 내 봤지만 부끄러워서

너처럼 대놓고 얘길 못했어.

가족들한테도 비밀로 할 정도로.

엄마가 이 사실을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듣고

’딸이 책 낸 걸 남들한테 들어야겠냐?‘는

잔소리와 함께 등짝 스매싱을 날리셨다니까."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차올랐지만, 얼굴을 구길 필요는 없었다. 10년 넘게 나를 봐 온 선배의 그 말 안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 있다는 걸 안다. 자신도 이미 책을 내봤다는 사실 어필 50% + 무명 초보 작가의 절박함을 향한 공감 30% + 내성적인 본래 성격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홍보에 임하는 후배를 보는 대견함 20%쯤 뒤섞여 있겠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며 선배의 말이 끝나기 전에 쫄깃하게 받아쳤다.        


“근데 제가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아. 직. 이름만으로 100쇄 거뜬히 찍는

대작가는 아니니까.

그러니 이렇게 얼굴 두꺼운

'책 82피플'이 될 수밖에요.

선배도 알잖아요. 이 마음.”     


그 때 걱정 만수르, 극 내향형 인간이 얼굴에 티타늄 합금을 깐 이유는 단 하나다. 책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더 알리기 위해서 였다. 매주 쏟아지는 새책이 약 1,500권, 1년이면 8만 여권. 출판 시장은 <오징어 게임 > 뺨칠만큼 냉혹한 생존 경쟁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자그맣고 연약한 내 책이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유명 작가님들 책에 밀리고, 대형 신간에 휩쓸려가기 전까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 보려는 절박함이다. 한 명이라도 더 내 책을 알고, 사고, 읽고, 기억한다면 책을 쓰면서 머리 쥐어뜯었던 시간과 책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진 않을 테니까. 그때 난 야망 넘치는 오징어가 아니라 그저 알량한 책임감에 짓눌린 오징어였다.       


약 1년 후. 다시 오징어 게임이 시작됐다. 내가 내 책을 홍보하는 ’ 책 팔이 오징어‘가 되는 날이 왔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시뻘게지는 셀프 홍보의 계절. 치열한 출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징어가 될 수밖에 없는 내향형 관종 작가의 운명이다. 출간 제안을 받고서도, 계약서를 쓰고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능력의 바닥을 보게 되는 초고를 다 쓴 후에도, 재능 없음을 직면하게 되는 교정·교열 기간에도 이보다 더 괴롭진 않았다. 끝이 가까워져 온다는 신호인 프롤로그와 작가 소개를 쓸 때도, 책의 얼굴인 표지와 제목을 고를 때도 책이 곧 나온다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담당 편집자님이 감리가 끝났고 온라인 서점 예약 판매도 열렸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드디어 시작이구나 싶었다. 출간 전, 후 약 일주일. 책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시간의 문이 열렸다. 동시에 피할 수 없는 ’ 오징어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DNA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싸력을 끌어모으고 모은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빌딩 숲 사거리에서 전단을 돌리듯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출간의 소식을 알리며 온라인 서점 링크를 공유한다. 시간만 채우면 되는 아르바이트생이라면 상대방이 받든 말든 영혼 없이 전단을 들이밀면 그만이겠이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프로 도망러이지만 머리 아파 낳은 내 새끼니까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가 없다. 오그라드는 손과 발을 애써 다림질 하고, 붉게 익어가는 얼굴을 진정시키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순간순간 현타가 밀려오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내향형 인간의 자아는 잠시 접어 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이 극한의 오징어 게임도 끝은 나니까.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오니까. 순간의 민망함에 물러서기보다, 오징어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대왕 오징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라도 해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면 오는 9월 30일 목요일에 세상에 나오는 이번 책, <쓸데없어 보여도 꽤 쓸모 있어요>의 진정한 쓸모가 반짝하고 빛날 테니까.      






** 온라인 서점 예약 판매 중 (9월 30일 발매 예정) **

예스 24
http://m.yes24.com/Goods/Detail/103861532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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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https://mbook.interpark.com/shop/product/detail?prdNo=353816692

영풍문고
http://www.ypbooks.co.kr/m_detail_view.yp?code=101126703

알라딘
http://aladin.kr/p/w44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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