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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01. 2021

입안에 켜진 비상 경고등

구내염의 쓸모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식사 후 공항으로 가는 일정만 남은 상태였다. 차가 한라산 등줄기인 중산간도로를 지날 때였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를 대신해 여행 내내 렌터카 운전대를 잡았던 운전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 생각보다 주유소가 너무 멀리 있는데?

곧 차 퍼지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빨간색 비상등이 켜졌다. 운전자의 말은 한라산 언저리에서 곧 차는 멈추고, 우리는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는 의미다. 연료 경고등이 켜지는 시점은 차마다 다르다. 연료 탱크의 연료량을 기준으로 소형차는 6~9L, 중형차는 9~10L, 대형차는 12L, LPG 차는 10% 미만일 때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다. 그래서 보통 늦어도 주행 가능 거리까지 50km 때 주유하는 걸 권장한다고 한다. 그걸 무시하면 엔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건 물론 고장 날 위험이 커진다. 그렇다. 차가 보낸 경고를 무시한 우리에게 ’ 사고의 위험‘이 코앞에 왔다.   

   

모든 게 낯설었다. 차도 평소 운전하던 차종이 아니었고, 길 역시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가야 했다. 육지의 도로만큼 평탄하지도, 주유소가 많지도 않았다. 이미 한참 전에 연료 경고등이 켜진 상태였다. 하지만 곧 여행은 끝나니까, 바로 렌터카를 반납할 거니까 라고 생각하고 주유를 미뤘다. 평생 기침을 달고 살아온 할아버지처럼, 엔진이 내는 불안한 진동과 소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가슴을 졸이며 두 손 모아 차가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빌었다.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달리는 사이, 저 멀리 주유소 간판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번쩍거리던 마음속 비상등이 그제야 꺼졌다.


차에 연료 경고등이 있다면 내 몸의 경고등은 ’ 입‘이다. 입의 컨디션을 보면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조금만 피곤하거나 무리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입 안팎은 전쟁통이 된다. 잇몸이 붓거나 입술에 물집이 생긴다. 또 혓바늘이 돋거나 입가가 찢어진다. 그중 내가 가장 괴로운 건 구내염이다. 6개월 넘게 구내염을 달고 산 적이 있다. 당시 난, 처음 손발을 맞추는 사람들과 처음 해보는 일을 더듬더듬해내야 하는 부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물리적으로 자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뿐. 장담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스트레스+수면 부족+영양 불균형의 3박자가 결국 내 입안을 일명 뽁뽁이 즉 에어캡(작은 공기주머니가 올록볼록하게 되어 있는 포장용 비닐) 상태로 만들었다.      


몸에 원래 없던 게 생기면 불편하지만, 단연 악독한 놈은 ’ 구내염‘이다. 우선 뭔가를 평소처럼 먹을 수 없게 만든다. 맵고, 짜고, 시고, 뜨거운 자극적인 음식은 일절 출입 금지다. 한식을 주식 삼아 사는 사람에게 그런 자극적인 음식을 빼면 먹을 게 몇 개나 될까? 식탐에 져서 자칫 그런 음식들을 들이면 생지옥을 경험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입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내염이 생긴 사람에게 너그러움이란 감정은 사치다. 여유는 배가 찼을 때나 나오는 거니까. 배고파 잠을 못 자면, 다시 입맛이 없다. 구내염이 몰고 온 고통은 삶의 질을 기하급수적으로 떨어뜨린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 입안에 구내염은 뿌리라도 내린 듯 사라질 기미가 없다. 고작 입안에 구내염이 생겼을 뿐인데 몸과 마음은 초토화된다.    

   

내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초대형 프로젝트가 끝난 후 구내염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고통에 무뎌져 ’이만하면 괜찮잖아? ‘하고 나를 다독이다가도 구내염이 돋는 조짐이 보이면 과감히 스톱 버튼을 누른다. 입안에 구내염이 돋기 시작했다는 건 내 컨디션에 문제가 생겼다는 경고니까. 이럴 때 몸이 보내는 경고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라산 허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퍼질 뻔한 차처럼,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덜컥 무릎이 꺾여 주저앉을 수도 있다.      


하루 세 번 양치질할 때도, 세수 후 화장품을 바르기 위해 거울을 볼 때도 유심히 살핀다. 내 컨디션의 리트머스지 같은 입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까탈을 부리지 않기 위해 내 상태부터 까다롭게 살핀다. 잠을 잘 재우고, 골고루 먹인다. 산책하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쿵작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에너지를 채운다. 여기서 에너지를 잘 채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 에너지 뱀파이어‘와 거리를 두는 것!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헛수고를 방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가까이할수록 에너지를 빼앗아 나를 지치게 만드는 에너지 뱀파이어들을 경계해야 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언제 이 평화가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 최악의 결과로 치닫는 망상 등등 존재 자체로 나를 갉아먹는 에너지 뱀파이어들부터 끊어내야 한다.      


차의 연료 경고등을 끄는 방법은 단, 두 개다. 차를 멈추고 연료를 채우거나 아니면 연료 없이 달리다 아예 덜컥 시동이 꺼지고 멈춰 서는 것뿐이다. 영원히 멈추고 싶지 않다면 경고등이 켜졌을 때, 잠시 주행을 멈추고 연료를 충분히 채워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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