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지금을, 당장을 쫀쫀하게
한적한 동네 패스트푸드점 한가운데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산책을 나왔다가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쉬게 할 심산이었다. 매장 가득 틀어 놓은 음악 소리, 햄버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아이가 눈을 박고 있는 스마트폰의 만화 속 성우 목소리, 돌고래 뺨치는 고음을 내뱉으며 호들갑을 떨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비빔밥처럼 적당히 섞여 있었다. ‘쌩귀’였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이어폰만 꼽고 있으면 집중하기 좋다는 딱 적당한 수준의 화이트 노이즈였다. 그런데 책에 집중하고 있는 내 귀에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 감지됐다. 종이를 북하고 찢어 구기는 소리. 코팅된 햄버거 포장지를 구기는 둔탁한 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여린 살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매섭게 할퀴듯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손길이 담긴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소음의 진원지부터 찾았다. 언제나 그렇듯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 더블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닮은 넉넉한 풍채와 생기 하나 없이 묘하게 빛바랜 채도의 옷,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도 여전히 허전한 정수리, 나무의 나이테 같은 옅은 선이 겹겹이 쌓인 돋보기까지... 여러 단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인심을 후하게 쳐도 60대 중반은 훌쩍 넘어 보였다. 그를 이렇게 세세히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는 [ 어르신 =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는 싫어하는 사람 ]이라는 편견이 깊이 박혀 있다. 이 편견의 출발점은 우리 집의 어르신들 덕분이다. 동생은 무슨 한이 맺혔는지 술이 진하게 취한 날이면 어김없이 햄버거가 가득 든 봉지를 손에 쥔 채 현관문을 연다. 알코올에 지배당한 정신에도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부모님 몫의 햄버거까지 알뜰하게 챙겨 온다. 효자긴 효자다. 효심의 방향을 잃어서 그렇지.
이 요상한 술버릇 때문에 환영하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 집에 입성한 햄버거의 운명은 뻔하다. 다음날이 되도록 햄버거는 식탁 위나 냉장고 속에서 봉지째 그대로 방치된다. 저주에 걸렸다는 흉흉한 소문에 휩싸여 버려진 유물처럼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다. 자체 숙성(?)하며 새 주인(보통 나나 동생)을 기다리거나 그 누구에게도 구제받지 못하면 결국 쓰레기통 행이다. 대부분의 음식에 대해선 적극적이지만 유독 햄버거만큼은 예외인 우리 집 어르신들과 정반대의 모습이라서일까? 부모님과 비슷한 또래의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햄버거 드시는 모습을 제대로 직관(?)하고 싶어서 자리를 잡을 때도 그 모습이 잘 보이는 테이블을 택했다. 소고기 패티 세 장이 빈틈없이 들어찬 햄버거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신기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햄버거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신 할아버지는 잠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셨다. 라이브 먹방쇼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인임을 깨닫고 나도 다시 책에 집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찢고 구긴 건 이력서였다. 근처 다*소에서 샀을 그 종이에는 손글씨로 또박또박 적은 자신이 살아온 흔적들이 담겨 있었다. 바로 전까지 햄버거를 쥐고 맛있게 드시던 할아버지의 손이 이번에는 이력서를 박박 찢어 구기고 있었다. 햄버거가 뱃속으로 들어가며 훌훌 벗고 남긴 포장지 위로 찢긴 이력서가 때 아닌 눈처럼 흩어져 쌓였다. 이력서는 왜 만신창이가 된 걸까? 한참 쟁반 위 잔해들을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햄버거 포장지와 뒤섞인 이력서 뭉치를 쓰레기통에 넣고 패스트푸드점을 떠났다.
이력서(履歷書). 이력을 적은 문서 즉 이름, 나이, 사는 곳, 다녔던 학교명, 해왔던 일 등등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간단하게 정리한 종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 내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걸 인증하기 위해 제출한다. 자기소개서만큼은 아니지만, 그간 성실히 인생을 살아왔다고 간단히 보여 줄 수 있는 삶의 흔적들을 요약정리한 문서다. 내 기준에는 할아버지와 이력서라는 두 단어는 좀처럼 접점이 없어 보였다. 마치 햄버거와 어르신처럼. 보통 그 정도의 연세라면 하던 일도 털고 손주 재롱이나 보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낼 거라는 게 내 머릿속에 박힌 노년의 모습이다. 굳이 이력서를, 그것도 손수 이력서를 쓰고 또 그걸 찢는 할아버지의 상황이 궁금했다. 4차 산업이니 AI니 하는 단어들이 난무하고,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관광을 가는 시대에 할아버지가 쓴 자필 이력서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동전의 양면 같은 새로운 시작. 이력서를 쓸 때는 두 가지 마음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반짝이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탈락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희망이 클수록 절망의 그림자는 어둡고 길다. 이력서 한 장에는 두 마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다. 이력서가 완성되지 못하고 한낱 쓰레기가 된 건 아마 순간의 절망이 더 깊어서이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몇 주가 흘렀고, 몇 번 비슷한 시간에 커피를 사러 패스트푸드점에 갔지만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할아버지의 이력서는 어떻게 됐을까? 묶음이었기에 여분의 이력서는 충분했다. 마음을 다잡고 이력서를 쓰고, 원하는 자리에서 일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젊은이들처럼 힘차게 햄버거를 흡입하는 기세와 열린 입맛을 가진 분이니 어디서든 에너지 넘치게 일하고 계시리라 기대한다.
‘이력서 할아버지’가 없는 패스트푸드점을 나오며 상상해 봤다. 내가 그 할아버지의 연세쯤 됐을 때 고심해 이력서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뒷방 차지하고 그저 숨만 쉬는 미라처럼 살고 싶진 않다. 하고 싶은 게 넘치게 많은 할머니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수명(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그때도 일을 하는 건 어쩌면 특별한 일은 아닐 거다. 잘하면 물론 좋겠지만 뭔가를 하고 싶다는 게 있는 것만으로도 노년의 삶은 분명 쫄깃해질 거다. 나의 노년이 다 늘어난 팬티 고무줄같이 느슨하고 힘없는 삶은 아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을, 지금을, 당장을 쫀쫀하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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