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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08. 2021

숨만 잘 쉬어도 칭찬받는 곳

내 호흡의 쓸모


하늘과 하이파이브라도 할 듯 솟아오르는 승모근. 거북이가 ’ 반갑다 친구야’라고 인사를 건넬 만큼 딱딱하게 굽은 등과 거북목. 딱따구리가 관자놀이를 날카로운 부리로 쪼는듯한 두통. 시뻘건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화. 현대인의 고질병을 한 몸에 담았다면 아마 내 몸이 아닐까? 갖가지 통증이 몸에 차곡차곡 쌓여 압사당하기 직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요가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아직 3개월이나 남았지만, 연말에 개최할 시상자도 나고 수상자도 나인 <2021 올해의 잘한 일 대상>에서 '요가'는 수상이 유력하다. 


요가의 시작은 호흡이다. 선생님의 카운트에 맞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전까지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내 호흡. 집중하면 숨을 잘 쉬지 않았고, 그나마 하는 호흡도 무더위에 헐떡이는 늙은 개처럼 짧았다. 호흡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내 호흡의 깊이와 속도를 알게 됐다.      


오늘은 '우짜이 호흡(Ujjayi pranayama)'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우짜이’는 승리, 정복, 상승을 뜻한다. 승리자처럼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하는 호흡인 우짜이 호흡은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호흡이다. 깊은 폐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 안쪽부터 열을 내 체온을 높여준다. 또 마음을 안정시켜 다양한 요가 동작이 가능하게 돕는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가슴을 활짝 펴며 폐 가득 숨을 채우고, 입으로 내뱉으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숨을 쉬며 살았던 걸까?     


초등학교 시절,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일요일 오전, TV를 보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특별한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고, 충격을 받은 일도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주말 오전을 보내고 있었을 뿐.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답답함이 나를 덮쳤다. 얼굴은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상태가 됐다. 엄마는 그런 나를 업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병원에 오니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숨이 쉬어졌다. 나를 진찰한 의사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했다. 결과는 다행이었지만 괜히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분명 나는 좀 전까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날 이후로 숨을 제대로 쉬지 않으면 죽는 거구나 알게 됐다.      


다시 숨이 안 쉬어진 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도 훌쩍 넘은 30대 중반의 일이다.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수개월째 잠을 제대로 자지도,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에 못 이겨 과호흡이 온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인생의 두 번째 과호흡이 오던 날, 삶의 방향을 확 틀었다. 그때까지 굳게 믿고 살았던 인생 모토, ’ 열심‘과 ’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를 버렸다. 텅 빈 그 자리에 ’적당히‘와 ’ 내가 좋아야 좋은 거‘라는 새 기준을 채워 넣었다. 그제야 겨우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요가를 하면서 어떻게 호흡을 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우고 있다. 들숨과 날숨. 수없이 들었던 이 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요가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을 시끄럽게 만들던 일을 향한 신경을 끈다. 수업이 시작되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숨이 들어오며 사방으로 넓어지는 갈비뼈를 느끼고, 숨을 내쉬며 풍선에 바람을 빼듯 복부를 살짝 끌어올리다 보면 꼭 이런 말이 들린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세요. 맞아요. 그렇게요.

잘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이렇게 호흡하세요."      


요가센터에서는 숨만 잘 쉬어도 칭찬을 받는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호흡을 하고 호흡을 멈추면 죽는다. 숨을 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제대로 호흡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산다. 숨 쉬는 건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캄캄해지는 것처럼 그저 당연한 일인 줄 안다. 돈과 시간을 써서 호흡을 배우고, 실천하며 알게 됐다. 바르게 숨 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대부분 남의 호흡에 맞춰 사느라 자신의 호흡은 모르고 산다.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처럼 남들의 기준과 속도를 쫓아가느라 숨을 헐떡인다. 남들 기분에 휘둘리고, 그들의 무례한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당연한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바쁜 출근길, 아침도 못 먹고 나온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닝 ‘어깨빵‘을 건네는 친절한(?) 시민. 복잡한 인도(人道)를 칼치기하듯 질주하는 킥보드와 오토바이.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독야청청 No를 고집하는 클라이언트. 눈에 보이는 뻔한 꼼수를 부리는 온갖 사람들까지. 짜증과 불안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는 건 변함없다. 예전이었다면 온몸으로 언짢음을 내뿜었을 거다. 얼굴을 찌푸리며 쌍욕을 내뱉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르다. 난 내 호흡을 아는 사람이다. 정수리부터 명치끝까지 가득 호흡을 채웠다가 한 번에 입으로 후~~ 내뱉는다. 불쾌한 기운들이 뜨끈한 숨과 함께 빠져나간다. 얼굴 찌푸려 봤자 주름만 늘고, 못생김만 폭발할 뿐이다. 그렇게 내 호흡, 충분히 여유 있는 긴 호흡으로 털어 버린다. 어차피 내 숨은 내가 쉬는 거고, 그 누구도 나 대신 숨을 쉬어 줄 수 없으니까. 그러니 무조건 내 호흡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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