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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30. 2021

출간 D-day, 드디어 꽃을 피우는구나?

웅크리기의 쓸모


메두사 머리를 닮은 다 말라비틀어진 시꺼먼 식물 뿌리가 덜컥 내 손에 쥐어졌다. 그걸 건넨 사람은 귀농 4년 차가 된 후배. 혹독했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따뜻한 남쪽 고향에 내려와 꽃을 키우는 청년 농부다. 5월, 카네이션 출하로 한창 바쁜 시기를 넘기고 겨우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길 때쯤 후배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차가운 상암동 빌딩 숲 사이에서의 면접자와 면접관으로 만났던 첫만남 이후 계급장 떼고 다시 만났다. 무려 4년 만의 일이다.      


눈물 어린 상봉 후 지역 특산물인 한우를 원 없이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후배가 일하는 꽃 농장을 구경하고 싶다고 졸랐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시골길을 달려 거대한 하우스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는 여름 시즌을 겨냥한 노지 해바라기가 한창 키를 키우고 있었다. 하우스로 안으로 들어가니 주 종목인 카네이션 출하를 끝낸 터라 누런 흙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민망했는지 후배는 작업장 구석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온다. 제법 농사꾼 티가 나기 시작한 후배는 뿌리를 건네며 말했다.       


“선배, 제 하우스 방문 기념품이에요.

이게 지금은 이래도 겨울이 되면 꽃이 펴요.

일단 시원하고 건조한 곳에서 

잠을 재워주세요.

날이 추워지면 물을 듬뿍 적셨다가 화분에 심어요.

잠을 깨면 싹을 틔울 거고,

잘 보살펴 주면 겨울에 꽃이 나와요.

이름은 라넌큘러스! 기억하세요.”       


“뭐? 겨울에 꽃이 핀다고?”     


“네. 지금은 ‘여름잠’을 자고 있어요.”     


“여름잠도 있어? 몰랐네.

다들 겨울잠 얘기만 하니까.”     


라넌큘러스. 언젠가 받았던 꽃다발 사이에서 본 적이 있다. 쑥갓 같은 잎 사이에서 핀 꽃이 신기해 그게 뭔지 물었을 때 들었던 이름이다. 핑크빛 솜사탕처럼 여린 겹겹의 잎이 소담스러웠던 꽃으로 기억한다. 꽃을 보기만 했지 키우는 일에는 관심 없던 난 뿌리 모양을 알 턱이 없었다. 아! 라넌큘러스는 오동통한 파뿌리 같은 거에서 피어나는구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겉옷도 벗기 전에 라넌큘러스의 생사부터 확인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오느라 가방 속에서 4시간 넘게 멀미를 했을 녀석을 꺼냈다. 햇병아리 농사꾼이 정성스레 포장해 준 덕인지, 정신없이 ‘여름잠‘을 자고 있어서인지 포장을 풀어도 여전했다. 신문지 이불을 덮어 냉장고 문 맨 위 칸 침실로 안내했다. 찬 바람이 불면 잊지 않고 꺼내기 위해 핸드폰 달력에 일정 알람까지 맞춰뒀다. 날이 추워지면 다시 만나자고 굿 나이트 인사를 건넸다.       


그전까지는 꽃은 따뜻할 때만 피는 줄 알았다. 겨울에도 꽃집에 꽃이 넘쳐나지만, 그건 다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우스에서 온도를 맞춰 계절을 멎게 하고 고급 영양제를 듬뿍 줘서 탐스러운 꽃을 피우는 건 줄만 알았다. 하지만 봄에 피는 꽃이 있고 겨울에 피는 꽃도 있었다. 나 같은 꽃. 알. 못도 관심 갖고 공부하면 겨울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사람들의 전성기는 다 같은 때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다. 남들이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우면, 조바심이 났다. 그들이 빛날수록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만 이렇게 웅크리고 있다가 영영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썩어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눈부시게 활짝 피어 사람들의 눈길과 찬사를 받는 게 부러웠다.                          


[여름잠] 명사

열대 지방의 일부 동물이 여름철의 더위나 건조기를 피하기 위해
여름철 일정 기간 동안 잠을 자는 일. 도롱뇽ㆍ악어 따위에서 볼 수 있다.


모두에게 겨울잠이 필요한 건 아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취향에 따라 휴면(休眠) 시기는 각기 다르다. 추워지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서늘한 곳에서 여름잠을 자는 라넌큘러스처럼.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성장 시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남들이 한창 활동을 하는 시기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환경이나 조건이 나와 맞지 않는데 무리해 봤자 꽃은 절대 피지 않는다.      


휴면 상태에 들어간 생물들은 보통 체온도 낮아지고 호흡도 느려진다. 언듯 보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죽은 게 아니다. 에너지를 쓰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지금 웅크리고 있다고 해서 마음 졸일 필요 없다. 자신에게 맞는 활동하기 좋은 때가 오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잠에서 깨어날 거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면 싹을 틔우고, 더 추워지면 꽃을 피울 라넌큘러스처럼.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주변인들에게 부지런히 알리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은 낯부끄러운 셀프 홍보의 날들이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하는 내 생각과 달리 대부분 축하한다고, 고생했다고, 기대된다고 힘나는 반응을 안겨준다. 그중에서도 오래전 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님이 해주신 말씀에 목 근처가 아릿해졌다.


드디어 네가 꽃을 피우는구나!


팀장님의 이 말에 컴컴한 땅속에서 웅크리고 여름잠을 자는 라넌큘러스처럼 숨 죽이며 살았던 시간들이 눈앞을 스쳤다. 다른 꽃들은 활짝 피고 열매를 맺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나만 꽃도 한 번 못 피어 보고 땅 속에서 썩다가 퇴비가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날들이 스르륵 녹아 없어지는 말이었다. 여름잠을 자는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 캄캄한 시간이 쌓여 한 권의 책으로 피어났다. 읽는 사람들에게 과연 이 꽃(책)은 어떤 색일까? 어떤 향일까? 그리고 또 나중에 어떤 열매를 맺을까? 궁금하다. 기대된다.   








9월 30일인 오늘 드디어 새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어제 에디터님께서 인쇄소에서 제작 완료된 따끈따끈한 책을 확인했는데 예쁘게 잘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요. 이 소식과 함께 비 오는 날 책이 나오면 잘 된다는 출판계의 속설(?)도 알려주셨습니다. 아마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속설과 같은 이치겠죠. 비가 오면 사람 발자국이 비에 지워져 악귀들이 따라오지 못하고,  또 천둥이나 번개가 치면 잡귀가 그 소리에 놀라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일을 앞두고 뭐든 좋게 생각하고 싶은 인간의 습성이겠죠. 이번 책은 그 속설을 증명하는 책이 될 수 있을까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모여야 하죠. 책 표지에 이름이 박힌 작가 한 명이 아니라 각자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열심'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모두의 수고가 그저 수고로만 끝나지 않고, 훈훈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뜨겁게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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