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에 주어지는 애정의 총량이 있을까?
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4살, 3살 위인 두 언니는 각자 가족 내 포지션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다시 3년 후, 동생이 태어났다. 막내이자 남자아이. (본인도 원한 건 아니겠지만) 태어나자마자 붙은 두 개의 타이틀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 사이에서 난 NN 년째 애매한 존재감을 품은 채 살고 있다. 3녀 1남 중 셋째 딸이라는 가족 사항을 소개할 때면 어김없이 놀라움 가득한 감탄사가 날아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한창 자랄 때도 흔치 않았던 ’ 4남매’. 근데 4남매가 그렇게 소스라칠 만큼 놀랄 일인가? 내게는 4남매가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들의 놀라움이 당황스럽다 못해 살짝 불쾌하다. 별 의미 없는 단순한 리액션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마음이 상한다. 조금만 시선이 모여도 얼굴이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내향인에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 사항으로 인해 관심받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매, 형제들과 손바닥만 한 집에서 복닥이며 컸다. 과자 한 봉지를 가지고 싸우고, 옷 선점권을 두고 투닥거렸다. 티브이 채널 쟁탈전은 일상이었고, 아침에 눈 떴을 때는 모든 게 사라진다는 쓰린 경험 때문에 당장 먹고 싶지 않아도 내 몫의 특식을 냉장고가 아닌 배 속에 넣고 잠들어야 했다. 평생의 소원이던 ‘내 방‘을 가진 건, 큰언니가 독립하고 작은 언니가 결혼한 20대 중반이 넘은 때의 일이다. 언니들이 차례로 집을 떠나고 난생처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내 공간을 가졌던 역사적 그날 밤, 잠들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외동들은 매일 이 평화로움을 누리고 산다는 거지?
어린 날의 난 외동의 삶이 궁금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 언니들을 거쳐 오느라 소매가 너덜너덜한 낡은 옷 말고 소매에 프릴이 꽃처럼 피어난 새 옷을 입는 외동. 잘못은 언니나 동생이 했는데도 한데 묶여 일심동체로 혼나지 않는 외동. 넋 놓고 있다가 내 몫이 없어질까 봐 가슴 졸일 필요가 외동.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도 어차피 다 내 꺼니까 욕심을 부릴 필요 없는 외동의 삶이 부러웠다.
주변의 외동들과 얘기를 해보면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클 때는 외로웠고, 어른이 되니 적지 않은 부담이 있다고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부모님의 사랑을 이제 갚아야 할 타이밍인 거다. 자매나 형제가 있다면 상의하고 역할을 나누면 되겠지만 외동에게는 그럴 사람이 없다. 노쇠한 부모님을 챙기고, 돌보는 일이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된 거다. 간병 서비스나 보험, 장례 업체 등 돈을 들이면 수행이야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확인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어릴 때 오롯이 받았던 사랑이 이젠 오롯한 책임감이 되어 돌아왔다.
한 사람의 일생에 주어지는 애정의 총량이 있을까? 그게 존재한다면 아마 어릴 때 목말랐던 부모님의 애정을 평생에 걸쳐 자매와 형제에게 ’ 무이자 할부’로 나눠 받는지 모르겠다. 4남매를 배 안 곯게 하고 학교 보내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부모님. 그들에게 갑자기 비가 쏟아진 날 우산을 챙겨 데리러 오기,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와 사진 찍어주기, 수저와 젓가락 말고 포크와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 가르쳐 주기,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기처럼 사소한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는 건 한계치 이상의 일일 거다. 외동이었다면 부모님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대신 언니와 동생이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부모님이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시간을 생각해 보니 그건 보통일 아니었다. 나 하나 건사하는 일도 이토록 벅찬데 그때 부모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을 거다. 그 시절 부모님이 줄 수 있는 사랑은 단순했다. 밥 굶기지 않고 학교 다니게 해 주는 거. 유년 시절,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던 그들에게 이 두 개 만큼은 자식들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다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였을 게 분명하다.
생계유지에 급급한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들이 씻기고 먹이고 챙겨 날 사람으로 이만큼 ‘맹글어’ 놨다. 이제는 각자의 삶을 잘 꾸리고 살지만 집의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4남매가 합체한다. 두 언니가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하면, 나와 동생이 서포트한다. K-장녀의 책임감, K-차녀의 실행력, K-아들의 의무감 사이에서 난 사부작사부작 흉내만 낸다. 외동이었다면 혼자서 짊어졌을 일을 4남매가 나눠서 한다. 외동을 부러워했던 나를 이제 외동들이 부러워한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아빠는 안방, 나는 내 방, 엄마는 거실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늦은 밤. 거나하게 취한 동생이 치킨을 사 와 방문을 두드린다. 내가 어렸고 동생은 더 어렸던 날들의 어느 밤, 품에 안고 온 누런색 종이봉투 안에서 (치킨 말고) 통닭을 꺼내던 아빠처럼. 언니들은 없지만 수십 년 전의 그 날밤처럼 가족들이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다. 몇 마디 오가지도 않고, 각자 채 3조각도 다 먹지 못한다. 부모님의 위장은 늙었고, 어릴 때처럼 경쟁적으로 먹어야 할 만큼 간절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결국 치킨 몇 조각이 덩그러니 남은 채 짧은 치킨 파티가 끝난다. 뒷정리를 하며 생각한다.
아빠가 사 오던 치킨을 이제 동생이 사 오네.
다 컸네. 다 컸어.
그래! 자매와 형제가 많다는 건
다 좋을 수도, 다 나쁠 수도 없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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