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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10. 2021

외동이 부러웠던 셋째 딸

한 사람의 일생에 주어지는 애정의 총량이 있을까?


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4, 3 위  언니는 각자 가족  포지션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다시 3 , 동생이 태어났다. 막내이자 남자아이. (본인도 원한  아니겠지만) 태어나자마자 붙은  개의 타이틀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사이에서  NN 년째 애매한 존재감을 품은  살고 있다. 3 1  셋째 딸이라는 가족 사항을 소개할 때면 어김없이 놀라움 가득한 감탄사가 날아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한창 자랄 때도 흔치 않았던 ’ 4남매’. 근데 4남매가 그렇게 소스라칠 만큼 놀랄 일인가? 내게는 4남매가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들의 놀라움이 당황스럽다 못해 살짝 불쾌하다.  의미 없는 단순한 리액션이라는  알면서도 매번 마음이 상한다. 조금만 시선이 모여도 얼굴이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내향인에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 사항으로 인해 관심받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매, 형제들과 손바닥만 한 집에서 복닥이며 컸다. 과자 한 봉지를 가지고 싸우고, 옷 선점권을 두고 투닥거렸다. 티브이 채널 쟁탈전은 일상이었고, 아침에 눈 떴을 때는 모든 게 사라진다는 쓰린 경험 때문에 당장 먹고 싶지 않아도 내 몫의 특식을 냉장고가 아닌 배 속에 넣고 잠들어야 했다. 평생의 소원이던 ‘내 방‘을 가진 건, 큰언니가 독립하고 작은 언니가 결혼한 20대 중반이 넘은 때의 일이다. 언니들이 차례로 집을 떠나고 난생처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내 공간을 가졌던 역사적 그날 밤, 잠들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외동들은 매일 이 평화로움을 누리고 산다는 거지?    

어린 날의 난 외동의 삶이 궁금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 언니들을 거쳐 오느라 소매가 너덜너덜한 낡은 옷 말고 소매에 프릴이 꽃처럼 피어난 새 옷을 입는 외동. 잘못은 언니나 동생이 했는데도 한데 묶여 일심동체로 혼나지 않는 외동. 넋 놓고 있다가 내 몫이 없어질까 봐 가슴 졸일 필요가 외동.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도 어차피 다 내 꺼니까 욕심을 부릴 필요 없는 외동의 삶이 부러웠다.      


주변의 외동들과 얘기를 해보면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클 때는 외로웠고, 어른이 되니 적지 않은 부담이 있다고 했다. 어릴 때 받았던 부모님의 사랑을 이제 갚아야 할 타이밍인 거다. 자매나 형제가 있다면 상의하고 역할을 나누면 되겠지만 외동에게는 그럴 사람이 없다. 노쇠한 부모님을 챙기고, 돌보는 일이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된 거다. 간병 서비스나 보험, 장례 업체 등 돈을 들이면 수행이야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확인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어릴 때 오롯이 받았던 사랑이 이젠 오롯한 책임감이 되어 돌아왔다.


한 사람의 일생에 주어지는 애정의 총량이 있을까? 그게 존재한다면 아마 어릴 때 목말랐던 부모님의 애정을 평생에 걸쳐 자매와 형제에게 ’ 무이자 할부’로 나눠 받는지 모르겠다. 4남매를 배 안 곯게 하고 학교 보내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부모님. 그들에게 갑자기 비가 쏟아진 날 우산을 챙겨 데리러 오기,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와 사진 찍어주기, 수저와 젓가락 말고 포크와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 가르쳐 주기,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기처럼 사소한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는 건 한계치 이상의 일일 거다. 외동이었다면 부모님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대신 언니와 동생이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부모님이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시간을 생각해 보니 그건 보통일 아니었다. 나 하나 건사하는 일도 이토록 벅찬데 그때 부모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을 거다. 그 시절 부모님이 줄 수 있는 사랑은 단순했다. 밥 굶기지 않고 학교 다니게 해 주는 거. 유년 시절,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던 그들에게 이 두 개 만큼은 자식들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다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였을 게 분명하다.      


생계유지에 급급한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들이 씻기고 먹이고 챙겨 날 사람으로 이만큼 ‘맹글어’ 놨다. 이제는 각자의 삶을 잘 꾸리고 살지만 집의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4남매가 합체한다.  두 언니가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하면, 나와 동생이 서포트한다. K-장녀의 책임감, K-차녀의 실행력, K-아들의 의무감 사이에서 난 사부작사부작 흉내만 낸다. 외동이었다면 혼자서 짊어졌을 일을 4남매가 나눠서 한다. 외동을 부러워했던 나를 이제 외동들이 부러워한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아빠는 안방, 나는 내 방, 엄마는 거실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늦은 밤. 거나하게 취한 동생이 치킨을 사 와 방문을 두드린다. 내가 어렸고 동생은 더 어렸던 날들의 어느 밤, 품에 안고 온 누런색 종이봉투 안에서 (치킨 말고) 통닭을 꺼내던 아빠처럼. 언니들은 없지만 수십 년 전의 그 날밤처럼 가족들이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다. 몇 마디 오가지도 않고, 각자 채 3조각도 다 먹지 못한다. 부모님의 위장은 늙었고, 어릴 때처럼 경쟁적으로 먹어야 할 만큼 간절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결국 치킨 몇 조각이 덩그러니 남은 채 짧은 치킨 파티가 끝난다. 뒷정리를 하며 생각한다.      


아빠가 사 오던 치킨을 이제 동생이 사 오네.

다 컸네. 다 컸어.

그래! 자매와 형제가 많다는 건

다 좋을 수도, 다 나쁠 수도 없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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