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책과 같은 문장을 만날 확률에 대하여
이건 대체 얼마의 확률인 걸까? 맹맹했던 일상에 ‘우연‘이 교묘하게 겹쳐 ’띠링’하고 효과음을 내는 순간이 최근 연달아 일어났다.
원 없이 눈이나 한번 보자고 친구들을 꼬드겨 강원도로 ‘급’여행을 떠났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라 대단하게 짐을 꾸릴 게 없으니 등에 짊어진 백팩이 홀쭉했다. 여유가 생겼으니 뭔가를 채워 넣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읽어야 할 책들 중 가장 얇은 책을 택했다. 복잡한 마음 털어내려 떠나는 여행이니 내용도 무게도 묵직한 책은 어울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약속 장소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예열시간이 필요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책을 읽으며 가라앉았던 기분을 끌어올렸다. 하나둘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카톡 메시지에 책을 덮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간만의 여행에 설렌 친구들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이런저런 수다가 이어지는 와중에 익숙한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양희은 선생님 책 있잖아..."
오잉? 내가 조금 전까지 읽은 그 책? 양희은 선생님의 에세이 『그러라 그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에이 설마... 얼마 전에 읽었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친구의 가방에서 그 책이 나왔다. 눈이 똥그래진 나도 가방에서 똑같은 책을 꺼냈다. 우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책 중에 이 여행을 함께 할 책으로 같은 책을 선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기묘한 우연에 서로 화들짝 놀랐다. 각기 가슴에 닿은 포인트들은 살짝 달랐지만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는 사이. 이래서 친구인가? 크고 작은 ’ 킬링 포인트’가 넘쳐나는 여행이었지만 가방에서 같은 책을 꺼내는 순간, 이번 여행이 한결 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이 신기한 경험이 한 번이었다면 이렇게 글을 쓰진 않았을 거다. 굳이 주절주절 긴 글을 적는 이유가 불쑥 내 일상에 발을 디밀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보통의 독서 루틴으로 돌아온 때였다. 여행할 때는 짐을 최대한 간결하게 꾸리기 때문에 단 한 권의 책만 신중하게 택하지만, 일상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손 닿는 곳곳에 여러 책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페이지라도 읽는 병렬형 독서를 하는 편이라서 였을까?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 『젊은 ADHD의 슬픔』을 읽는 중이었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확진을 받은 작가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은 이 책 속에서 익숙한 문장이 눈에 훅 들어왔다. 몸 쪽 깊숙하게 들어오는 돌직구의 속도와 강도로.
너에게서 나온 건 너에게로 돌아간다.
며칠 전에 읽었던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서도 눈에 밟혀 메모장에 적어뒀던 문장이었다. 다른 작가, 다른 출판사, 다른 출간일, 다른 표지, 다른 소재의 책에서 같은 문장을 발견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이렇게 연이어. 이 우연이 신기해 그 문장을 쓰다듬듯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라 그래』
너에게서 나온 건 너에게로 돌아간다.
같은 책, 같은 문장. 그런데 이건 단지 우연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연만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듣고 싶은 말이자 나를 단단히 잡아줄 말이 아닐까? 아마도 이 우연은 내가 불러낸 주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에 단단함이 차올랐다. 내 일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 말, 글, 메시지가 쏟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무심히 흘려보낸다. 우연이라 생각했던 이 사건(?)은 내게 필요한 메시지만 마음의 채에 걸러 내 주머니에 넣어 뒀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결과에 가깝다. 불안한 오늘과 모호한 내일을 살고 있는 내게 남들이 뭐라고 하건 '그러라 그래'하고 넘기며, '나에게서 나온 건 나에게로 돌아올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낭비하지 말고 오늘을 알차게 살라는 하늘의 메시지일지 모른다. 그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고, (종교는 없지만)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메시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음의 온도가 3도쯤 올라간 기분이다. 의도야 뭐가 됐건 그러라 그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니까. 정신승리라고 비웃어도 좋다. 허약한 마음으로 삐그덕 거리며 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나에게서 온 건 나에게로 분명 돌아올 테니까. 다시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모은다. 다시 내게 던져질 반복된 메시지를 찾기 위해 집중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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