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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02. 2022

넌 싸이월드 복구 안 해?

복구하고 싶은 건 사진첩이 아니라 내 인생


친구들끼리 일상 수다를 떠는 카톡 단체 대화방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대학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사진이었다. 요즘 사진에 비해 흐릿하기 짝이 없는 저화질 사진 속에는 돈도 시간도 없었지만 젊음은 있었던 파릇한 시절의 우리가 있었다.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조합한 끝에 싸이월드에 입성한 친구들. 고대 유물을 발굴해내는 책임감 넘치는 고고학자처럼 사진첩을 뒤져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공유해 준다. 사진 속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색함을 한 바가지 끼얹은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고작 십수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시절의 내가 한없이 낯설다. 지금보다 주름도, 기미도, 흰머리도 없지만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손에 쥔 것도 없고 앞날은 막막하기만 한 시간들. 없는 시간을 쪼개 잠시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고, 수다를 떨며 바닥난 에너지를 채우고 불안을 지웠다. 이제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회사의 과장이 되고, 선생님이 되고, 사장이 된 친구들. 1N년 후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각자 자기 인생의 고비들을 넘은 끝에 오늘에 닿았다. 미래는 여전히 모호하고, 믿을 구석이라고는 나 자신 뿐이라는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에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생의 짬이 찼다.       


요즘 동년배들 사이에 가장 핫한 이슈는 돌아온 싸이월드다. 페북도 인스타도 없던 시절, 특유의 ‘갬성‘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1세대 SNS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나 역시 도토리로 기분에 따라 BGM으로 바꾸고, 미니미를 꾸미기에 몰두하며 파도를 타던 시절이 있었다. 똑딱이 디카로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며 싸지른 짧은 ’갬성글‘로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별생각 없이 발을 담갔던 싸이월드. 모든 게 불안정하고, 어수룩했던 그 시절의 생각과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넌 싸이월드 복구 안 해?     


친구들은 당연한 듯 묻는다. 난 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히 지우고 싶은 흑역사를 내 손으로 개봉하고 싶진 않다. 싸이월드의 시대를 지나 트위터, 페북을 거쳐 인스타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입은 했지만 섭외나 자료를 찾기 위해 업무 용도로나 쓰지 따로 게시물을 올리진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쫓아가긴 이제 숨이 찬다.     


정말로 복구하고 싶은 건 싸이월드 사진첩이 아니라 저화질 사진 속 내 인생이다. 그럴 수가 없으니 ’과거의 나‘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 해주고 싶은 말을 ’지금의 나’가 행동으로 옮기도록 어깨를 떠민다. 눌러앉으려는 소심하고 게으른 엉덩이를 일으키게 만든다. 할까 말까 고민할 시간에 일단 실행하고 보자고. 길어야 할 건 고민이 아니라 깨달음의 여운이라고. 싸이월드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빗겨나 긴 잠을 자고 있던 사이, 깨지고 부딪히고 넘어지며 내가 얻은 생생한 경험들이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불안해하는 나를 도닥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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