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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30. 2022

늙은이 말고 낡은이

처음부터 낡은 채 태어나는 건 세상에 없다


6월이 되면 요가를 시작한   14개월째가 된다. 1 하고도 2개월이 넘었다. 시작할   해도 내가 이렇게 꾸준히 요가를 하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  달만 해보고  맞으면 그만두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요가. 이제는 횟수에 연연하지 않도록 무제한 수강권을 끊어 가고 싶을 때마다  정도다.     

 

스케줄이 불규칙해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고정된 시간에 가지 못한다. 덕분에 1년 넘게 요가 센터를 다니면서 시간대별 회원의 특징을 파악했다. 아침 시간에는 주로 가족들을 학교나 회사로 보낸 주부나 엄마 또래의 어르신들이 많다. 은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반듯한 자세를 뽐내는 60대 어르신. 굽은 등과 떨리는 손을 가졌지만, 느릿느릿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요가를 즐기시는 70대 어르신이 계신다. 퇴근한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저녁 타임에는 파릇한 20~30대와 남성 회원들이 많다. 몸매가 드러나는 스타일리시한 크롭티와 컬러풀한 레깅스 차림부터 집에 굴러다니는 운동복을 입고 온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옷차림과 실력은 별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내면의 곡소리를 들을 때면 잠시 여기가 요가센터가 아니라 장례식장인가? 싶을 정도다. 곡소리 합창이 끝난 후 시작되는 밤 타임은 심야형 인간인 내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대다. 오전 타임의 묘한 고정석 싸움도 없고, 저녁 타임의 번잡함도 없다. 하루를 살아 내느라 모든 기력을 쏟은 사람들이 명상과 스트레칭으로 잔잔하게 에너지를 채우러 온다. 잔잔한 어둠 속에서 몸을 늘이고, 구기다 보면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녹아내린다.  


시간대별 차이뿐 아니다. 신년, 봄, 월초, 주초가 되면 많은 결심이 모인다. 이 시기가 되면 신입들이 텍사스 소 떼처럼 밀려든다. 쭈뼛쭈뼛한 표정으로 새 요가 매트를 들고 센터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불과 1년 2개월 전의 내 모습이다. 반짝이는 새 요가 매트 위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1년 사이에 선생님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음 동작을 준비하는 숙련된 요린이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초급자 매트에서 업그레이드해 조금 더 고가의 매트를 장만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요가에 빠질 줄 예상 못했으니 처음에는 가성비 좋다는 매트를 샀다. 그다음에는 조금 더 밀림이 덜하고, 바닥에 착 감기는 느낌의 두툼한 매트를 구매했다. 그 매트도 어느새 땀자국과 손자국으로 얼룩덜룩해졌다. 신입 요린이들의 매트는 반짝였고, 요가센터 고인물들의 매트는 낡고 허름했다. 1년 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요가를 시작했던 요린이 중 남아 있는 사람은 아마(?)도 나뿐이다. 1년 전에도 있던 회원 중 지금까지 있는 사람은 10%가 될까? 그 10%는 3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있던 그야말로 고인물 중의 고인물들이다.      


물건 따위가 오래되어 헐고 너절하게 된 상태를 우리는 ‘낡는다’라고 표현한다. 땀에 절고, 여기저기가 헤진 요가 매트를 보면서 ‘이 낡은 걸 버리고 얼른 새 걸 사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낡은 것을 애써 품고 있는 게 구차하고 구질구질하다고 여겼다. 반면 ‘새것’이 가진 특유의 생생함, 싱그러움, 당참을 부러워했다. 생각도 행동도 취향도 내가 낡아 간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낡은 건 버려야 하는 것, 새것으로 바꿔야 하는 것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그 낡은 것들도 분명 반짝이고 싱그러운 때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어떤 물건이 낡기 위해서는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수없이 단련해야만 한다. 낡았다는 건 그만큼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무언가를 했다는 흔적이었다. 처음부터 낡은 채 태어나는 건 세상에 없다.

요가 센터의 한쪽, 회원들의 요가 매트를 보관하는 정리함에는 이름표를 단 형형색색의 매트들이 빼곡히 차 있다. 낡은 요가 매트 사이 갓 상표만 뗀 사용감 없는 요가 매트들이 보인다. 과연 이 새 매트들 중 낡아 갈 요가 매트는 몇 개나 될까? 이 중에서 정리함을 빠져나오자마자 당근 마켓으로 직행하게 될 매트는 어떤 걸까?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그토록 동경했던 ‘새것‘들의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 낡은 것’들이 품은 힘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낡아 보니 알겠다. 낡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또 대단한 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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