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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23. 2022

집에 가고 싶다

전세계 집순이&집돌이들의 영원한 소원


늦은 시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는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손에 수험서를 든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공시생, 이어폰을 꼈는데도 새어 나올 만큼 큰 음악 소리에 취해 둠칫 둠칫 어깨를 흔드는 힙합 보이, 피난이라도 가듯 무언가를 넣어 터질 듯한 배낭을 멘 할머니, 주위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효과음 가득한 핸드폰 고스톱 게임에 심취한 할아버지, 얼큰하게 취해 얼굴이 새빨간 직장인,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SNS 피드를 올리는 고등학생, 내일 아침에 집에 도착할 식재료를 새벽 배송 쇼핑몰의 장바구니에 담는 중년 여성 등등 각자의 스타일로 시간을 보내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며 지루한 퇴근길을 버티던 내 눈에 건너편에 앉은 한 대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과제나 학과 일에 바빠 아침 일찍 나오고 밤늦게 들어가서일까?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학과 점퍼(일명 과잠)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신기해 찬찬히 모습을 훑다가 소매 부분에 절대 지워지지 않을 자수로 촘촘히 쓰인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집에 가고 싶다


선명한 남색 고딕체로 <집에 가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곳에는 보통 학번과 이름이 박혀 있는 게 흔한데 이 문장은 대체 누가 택한 걸까? 지독한 집순이&집돌이들이 내뱉는 내면의 아우성을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내뱉는 용기 있는 자는 과잠의 주인인 저 친구일까? 오만가지 궁금증이 몰려들었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나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나갈 때도 있고, 남들이 보통 퇴근할 시간에 사무실에 갈 때도 있다. 출퇴근 시간은 불규칙적이지만 언제가 됐건 집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규칙적으로 생각한다.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집에 가고 싶다.‘고. 온종일 불이 나게 울리는 연락에 쫓기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시달리다가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집에 황금 송아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에 가고 싶을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집이라서일까? 사회생활을 하려면 내 본성의 100%를 보여줄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 발사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배 긁으며 영혼 없이 뒹굴거리다가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는 어쨌든 멀쩡한 사람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 눈에 총기를 채우고, 앞뒤 논리가 맞는 말을 해야 하고, 손해 보지 않게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일에 구멍이 나지 않게 부지런함으로 매워야 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장착해야 한다. 내 안의 투덜이, 삐딱이, 게으름이를 애써 억누르고, 보통 혹은 평범한 사람인양 웃고 행동해야 한다. 외향형 사람들에게는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채워지겠지만 지독한 내향형인 내게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다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다.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아닌 척, 내 안의 없는 생기를 쥐어짜 사회생활을 한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이제 그 학생의 과잠 소매가 생각날 거 같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슬며시 손목을 올려 턱을 괴며 진심을 담은 그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슬쩍 보여주는 대학생을 상상해 본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척 팔목을 돌려 소매의 메시지를 보여줄 수도 있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슬쩍 소매의 메시지를 어필할 수도 있다.      


과잠이 없는 ’ 낡은이‘인 나는 어찌해야 할까? 문신은 아프니까 일단 제외하고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궁서체로 써서 올려둘까? 노트북 대기화면에 고딕체 메시지를 적어 둘까? 집. 에. 가. 고. 싶. 다. 여섯 음절로 머리띠를 만들어 쓸까? 메시지를 쓸 수 있는 팔찌라도 하나 장만해 볼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오후, 내향인의 진심이 담긴 은은한 돌+I끼가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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