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07. 2022

인싸는 다른 인싸로 잊혀지네

캐릭터의 상대성


  

얼마 전, 요가 센터의 안내 데스크 담당자가 바뀌었다. 차분하고 잔잔했던 이전의 단발머리 선생님과 달리 새로 온 A선생님은 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인사로 회원들을 맞아줬다. 아침에 가건, 밤에 가건 늘 한결같은 하이 텐션과 톤의 인사는 그녀의 시그니처였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인싸력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외향형 특유의 격 없는 친화력에 서서히 나도 A선생님께 물들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이전에 보지 못한 다운된 텐션으로 차분하게 인사를 했다. 어디 아픈 건가? 살짝 걱정이 됐지만, 안부를 더 물을 틈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쫓겨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1시간의 수업을 듣고서야 왜 그녀가 낮은 텐션이었는지 의문이 풀렸다. 이유는 바로 대강하러 온 선생님. 그녀의 이름을 H선생님이라 하자. 기존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갑자기 외부 일정으로 수업을 빠지게 되어 대신 수업을 맡았다. 겉으로는 선은 얇고, 근육은 탄탄하게 차 있는 요가 선생님 특유의 스타일인 H선생님. 그러나 목소리는 달랐다. 음계로 치면 솔, 라, 시를 넘어 ‘도‘에 이르는 극강의 고음. 약간 혀에 버터를 얇게 펴 바른 듯 부드러운 영어 발음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미국 LA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서핑과 태닝이 취미인 하이틴 소녀 같은 해맑음. 그리고 한반도의 혹한이나 시련 따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처럼 온화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날 난생처음 보는 회원들을 30년 지기 영혼의 짝꿍처럼 대하고 있었다. 마치 그 집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하는 사람처럼. NN 년 인생에 처음 보는 텐션의 인싸였다.      


A선생님이 신라면 매운맛의 인싸 라면, H선생님은 불닭볶음면 맛의 인싸였다. 내 기준에 A 선생님의 인싸력도 과하다 싶었는데 가히 천상계 수준의 인싸력을 갖춘 H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오히려 A선생님의 인싸력이 순한 맛처럼 느껴졌다. H선생님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구역의 최강 인싸였는데, 어느새 A선생님은 세상 조신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컴컴한 거리를 걸으며 피식 웃음이 났다. 이토록 한 순간의 A선생님의 존재감이 사라지다니... 인싸의 상대성일까? 분명 같은 사람이었는데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언젠가 친구의 초대로 친구들의 지인이 모인 자리에 간 적 있다. 평소 내가 보는 친구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수동적인 스타일이었다. 앞에 나서는 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나만큼이나 즐기지 않는 편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인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모임에서 친구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이었고, 목소리를 높여 분위기를 주도했고, 앞장서서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을 리드했다. 스스로를 내향인이라고 말했던 친구. 신생아급 낯가림을 하던 내 친구와 동일인인가? 의심스러웠다. 한참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살짝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잘하면서 우리 모임에서는 왜 그토록 뒤로 물러서서 팔짱만 끼고 있던 걸까? 그날의 모임을 마무리하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그 모임의 구성원들은 친구보다 훨씬 더 내향적인 사람들이었다. 정리하면 극강 내향인들 모임에 그중 내 친구가 제일 외향적인 성향이었다.


나 역시 대부분의 모임에서는 입을 닫고 귀를 여는 편이지만 어느 모임에 가면 입을 활짝 열고, 리드하기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성격 중 어떤 게 튀어나올지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크다. 하루 24시간을 240시간처럼 알차게 쪼개 쓰는 사람이 보기에 나는 게으른 사람이 된다. 반면,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모토로 사는 집순이가 보기에 나는 부지런히 싸돌아 다니는 사람이 된다. 분명 나라는 사람은 한 명인 데도 이렇게 극과 극의 성향으로 만들어 버린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가? 그들을 통해 나를 다시 비춰 본다. 나는 머물러 있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