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29. 2022

뚝딱이들이여! 열심보다 진심

인생 뚝딱이들에게 필요한 말

  

뚝딱이 

몸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치 관절을 뚝딱거린다고 하여 생긴 말 


무섭게 장맛비가 쏟아지는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다 한 프로그램에 손이 멈췄다. 춤에 대한 열정은 넘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뚝딱이‘들을 모아 춤에 대한 한(?)을 풀어주는 리얼리티 <뚝딱이의 역습>.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지막 회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다. 딱히 나와 접점도 없는 분야이기도 하고, 춤치들을 모아다 혹독한 훈련 끝에 무대에 올라 미운 오리 새끼가 멋진 백조가 되는 것처럼 화려한 변신을 하는 뻔한 이야기 흐름이 눈에 그려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뚝딱이의 역습>은 보란 듯이 내 편견을 와장창 깨 줬다. 댄스 마스터 모니카의 이 한마디에 내 마음에도 폭우가 내리쳤다.    


열심보다는 진심으로 해주길 바라요.   

   

댄스 뚝딱이들은 모두 1등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물집이 잡히고, 몸을 혹사시키는 연습에 열중이었다. 춤을 잘 추고 싶다는 마음은 저만치 앞서 가지만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에 좌절하고, 실망하는 댄스 뚝딱이들에게 모니카 선생님이 해 준 말이었다. 채찍질하는 말은 분명 아니었는데 이 말을 들은 댄스 뚝딱이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마치 에너지 음료 1,000개를 드링킹 한 것처럼 빛의 속도로 눈에 광채가 채워졌다. 누구보다 춤에 진심이었던 그들이었기에 모니카 선생님의 그 말뜻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렸다. 진심을 다했다면 1등이 아니어도, 결과가 무엇이든 받아들일 자세가 된 뚝딱이 들이었다. 진심이 가득하다면 열심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마련이다. 최종 순위 발표에서 모니카 팀은 1등은 아니었지만 진심을 쏟은 후회 없는 춤을 선보인 후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열심히는 누구나 해
그러니까 잘하는 게 중요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말. 분야를 막론한 결과 중심 사회에서 열심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열심은 당연하고, 그마저도 결과가 나쁘면 열심은 종종 무쓸모가 된다. 잘하는 건 쉽지 않으니 일단 ’ 열심’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내 열심’에 취해 종종 왜 해야 하는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지, 진심이 뭔지도 모르고 달리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뚝딱거리기 일쑤고, 몸이 뚝딱이기 시작하다가, 인생이 뚝딱거리게 됐다. 희한하게 뚝딱이들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뚝딱이게 된다. 이게 바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뚝딱이의 늪이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여기저기 어설프고, 실수들이 눈에 띄던 마지막 무대를 여한 없이 즐기는 뚝딱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인생 뚝딱이들에게 ‘열심히는 누구나 하니까 잘해’라는 채찍 같은 말 보다 ‘열심보다는 진심으로 해보자’라는 당근 같은 말을 해준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매번 내 열심을 배신했던 결과를 움켜쥐고 좌절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세상의 기준에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진심을 다했고, 아쉬움 없다면 난 덜 쭈굴 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더 일찍 세상을 향한 불신을 지우고 마음의 여유를 채웠을 수 있을 텐데...        


오늘도 나는 뚝딱인다. 처음 가는 가게의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거리고, 낯선 이름의 요가 동작 앞에 헤맨다. 계약서 안의 어려운 전문 용어들을 보고 머리를 쥐어뜯다 사전을 찾아 뒤지고, 섭외 전화를 하면서도 주어와 서술어가 묘하게 삐끗한다. 어기적어기적 부자연스럽게 순간순간을 하루하루를 이어 가다 보니 ‘어? 기적’처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번듯한 결과로 돌아온다. 뚝딱은 사라지고, 똑딱똑딱 잘 돌아가는 시계처럼 자연스럽게 해내고야 만다. 모니카 쌤처럼 곁에서 ‘열심 보다 진심’이라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내게 해준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열심보다 진심으로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본의 아니게 남의 아지트에 무단침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