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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18. 2022

네가 쓴 글은 재미가 없어

이해는 이성의 영역, 서운은 감정의 영역

  

 

네가 쓴 글은 재미가 없어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 폭우를 뚫고 어렵게 만난 친구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팩트. 거침없는 팩트 폭력에 무기력하게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얼떨떨한 머리와 얼얼한 가슴을 부여잡고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며 말을 이어갔다.       


맞아. 재미없지?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면 재미있는 글이 나왔을까?       


첫 번째 책 <포스트잇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작가 소개라는 마지막 큰 산을 앞둔 때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라는 무명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고민했다. 책을 선택할 때, 나는 작가 소개부터 뒤진다. 짧게는 한 줄, 혹은 단어 몇 개 아니면 천일야화 뺨칠 끝없이 이어지는 빽빽한 문장으로 작가를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그 책이 담고 있는 많은 것들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의 이력, 성향, 관심사 하다못해 작가가 키우는 반려동물 이름까지 알게 된다. 몇 날 며칠 다른 작가님들의 작가 소개를 찾아 책날개를 뒤지고, 나를 설명할 단어들을 갈무리했다. 어렵사리 정리한 세 줄짜리 작가 소개를 담당 편집자에게 넘기면서도 반려되지 않을까 고심했던 문장은 마지막 그 문장이었다. (예비 독자들이 책 구매를 결정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문장이기에)  

   

웃기는 글을 쓰고 싶은데 매번 다소 진지해지는 게 고민이다.     


이토록 나는 누군가를 웃기고 싶어 한다. 그것도 몹시, 매우, 그리고 강렬하게. 말로 웃기고 싶지만 말주변이 없고, 몸으로 웃기고 싶지만 센스가 없다. 그러니 그나마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글쓰기로 웃기려 보려고 여기저기 비벼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박장대소하게 만들기는 불가능하니 딱 한 포인트라도 독자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대단한 철학이나 메시지를 줄 위인도 아니니 그저 한 번이라도 피식 웃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나도 모르지 않는 내 문제를 타인이 콕 짚어 말할 때, 온몸이 굳어 버린다. 특히나 내가 쓴 글에 대해 얘기한다면 뇌를 넘어 입까지 굳어 버린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좋은 글을 쓰길 바라는 조언과 응원이라는 걸 충분히 안다. 그게 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의도를 이해하고 일단 수긍한다. 무자비한 팩트 폭력이라 할지라도 내게 독이 될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얼어붙었던 뇌가 서서히 해동될 때 수면 위로 드러난다. 술자리를 파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혼돈의 1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있었던 순간들, 듣고 말했던 문장들을 되짚어 본다. 다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아프게 말했어야 할까? 그제야 서운함이 밀려든다. 분명 좀 전까지 수긍했던 말인데 냉철한 이성이 떠나간 자리에서 예민한 감정이 버림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주저 앉아 울부짖는다. 분명 나를 위해 하는 말인데 그 말을 듣고 서운해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는 이성의 영역이고, 서운은 감정의 영역이다.   

   

분명 내가 이해하고 동의한 부분인데 왜 서운한 감정이 들었을까 궁금해 책을 뒤졌다. 책을 쓴 심리학 박사는 영역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내 글이 재미없다는 걸 인정했듯 서운한 감정도 인정하면 그만이었다. 서운한 감정이 틀린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미안해야 할 이유도 아니었다.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은 많으니, 이렇게 가까이서 종종 팩트 폭력으로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맙다.   

   

다음번에도 누군가가 내게 들으면 심장이 아릴 팩트 폭력을 가한다 해도 난 또 일단 이해하고, 수긍한 후 서운해할 거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그 서운한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 거다. 이해는 이해고, 서운은 서운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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