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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18. 2022

족발이 빛나는 밤에

서교동 <마산족발> 방문기


   

태어나 처음 혼자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매번 일로 왔었던 부산, 그때마다 예정된 스케줄대로 차에 실린 짐짝처럼 이리저리 숨차게 움직이기 급급했다. 그러니 적지 않게 부산에 왔는데도 아는 게 없었다. 스스로 선택했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왈칵 밀려든 자유를 품에 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출발할 때 겨우 예약한 해운대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낯선 곳에 뚝 떨어진 겁 많은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때, 발랄한 여대생 둘이 들어왔다. 딱 반나절 먼저 게하 입성했을 뿐이지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다시 내일은 뭐 하지? 고민하고 있었다. 짐을 푼 두 학생이 주방으로 나왔고, 저녁으로 포장해온 치킨을 자연스럽게 나눠 먹기 시작하면서 안면을 텄다. 극내향인도 난생처음 본 사이지만 10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밀해진 건 우리가 있는 곳이 ‘게스트 하우스’였기에 가능한 마법이다. 전남 출신과 경기 남부 출신. 둘 다 서울의 같은 대학에 다니며 친구가 됐고, 방학을 맞아 <내일로> 여행 중인 사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전주, 순천, 여수를 거쳐 부산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분명 반짝일 나이였지만 곧 졸업과 취업이라는 불투명한 시기를 앞둔 터라 고민과 걱정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언니, 저희 내일 냉채 족발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잘 됐다. 족발이 혼자 먹긴 힘든 메뉴잖아. 데려가 줘서 고마워.  

그럼 내일 저녁에 남포동에서 만나요.       


‘혼족’도 당당히 메뉴판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시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혼자 먹으면 희한하게 흥이 안 나는 메뉴가 바로 족발이다. 보쌈의 영원한 라이벌, 밤에 먹어야 더 맛있는 국민 야식 족발은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야만 비로소 진정한 맛을 완성되는 음식이다. 그래서 여럿이 모일 때, 치킨은 질렸고 삼겹살은 부담스럽다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족발을 떠올린다.      


코로나19 여파로 홍대, 연남, 합정 일대에 있던 오래 다니던 마음의 안식처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갈 곳을 잃은 우리는 안식처를 찾는 모험 중이다. 그러다 서교동 골목에 오래된 족발집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단순 업소명이 아닌 지역의 랜드마크 같은 역할을 하던 청기와 예식장 자리에 세련된 호텔이 우뚝 서는 시간 동안에도 근처에서 변함없이 4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온 <마산족발>. 수 없이 그 길을 지났는데 왜 나는 이곳의 존재를 몰랐을까?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목적지로 향했다.     

 

외관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졌다. 출입문의 프레임, 창에 붙은 메뉴의 폰트, 창에 붙은 시트지까지... SNS를 달구는 핫한 뉴트로 가게들처럼 급조된 혹은 강제 주입된 레트로가 아니었다. 시간의 때가 켜켜이 묻은 ‘찐’ 레트로였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주인의 인사보다 먼저 진한 육향이 코를 뚫고 들어왔다. 족발집에 가면 흔히 맡을 수 있는 진한 한약재 냄새는 아니었다. 주문을 위해 메뉴판을 찾아 주방 쪽 벽을 둘러보다 눈이 커지는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필체에서 빡침이 넉넉히 밴 손글씨로 <혼자 오신 손님에게는 술을 절대 팔지 않읍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알코올 없이 족발을 먹는 건 에어컨 없이 여름을 견뎌야 하는 것만큼 괴롭다. 혼자 밥 먹고(혼밥), 혼자 커피 마시고(혼커), 혼자 영화 보고(혼영, 혼무), 혼자 공연 보고(혼공), 혼자 등산하는(혼등) 것이 어색하지 않은 ‘혼능주의 시대’에 혼술이 불가능한 족발집이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중에 들어온 옆 테이블 손님이 그 이유를 물으니, 혼자 술 마시는 손님 중에 진상의 횟수가 많았고 그 쓰린 경험이 자연스레 이런 공지를 만들었다. 노포이기에 가능한 대쪽 같은 규칙이 생기기까지 이곳은 몇 번의 난장판이 됐을지 눈에 그려졌다.)      


보통의 족발집에서는 답이 정해진 고민을 한다. 쫄깃하지만 약간 가격이 있는 앞다리냐 저렴하지만 담백한 뒷다리냐. 맛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뭐 중요하냐고 하지만, 내게는 중요하다. 몇 천 원을 더 주고서라도 난 앞다리를 먹고 싶다. 날이면 날마다 먹을 수 있는 족발이 아니니까. 의외로 족발이나 닭발처럼 발 종류를 입에도 못 대는 사람도 많고, 족발 특유의 그 한약재 향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모인 사람들이 족발 러버일 확률은 극히 드물다. 하늘이 내린 족발 메이트들과 함께 족발을 씹는 날은 그래서 내게 더없는 기쁨이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지만, 일단 소맥부터 말아 들이켰다. 날은 더웠고, 족발 메이트들은 혈중 족발 농도가 희미해져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상태였다. 소맥으로 입을 헹궈 경건하게 족발을 영접할 준비를 마쳤다. 족발 메이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족발이 우리 테이블에 내려지는 순간 일제히 환호와 함께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다. 내한을 위해 공항 입국장 문을 빠져나온 슈퍼스타를 영접한 열혈 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      


일단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 아무것도 찍지도 싸지도 않고 순결한 족발을 입에 넣었다. 어? 예상치 못한 낯선 기운이 입안에 퍼졌다. 꽤 오래 따끈한 온족에 익숙했던 혀가 당황했다. 따뜻하고 진한 맛이 밀려들 거라 예상한 입에서 느껴지는 건 차가움과 쫄깃함이었다. 아이스크림처럼 이가 시릴 만큼 차다는 게 아니라 온기가 없는 냉랭한 상태를 말한다. 흐물텅 부드럽게 씹혀야 할 껍질은 쫀득하게 탄력이 느껴졌다. 잡내를 잡기 위해 갖은 향신료를 때려 부은 족발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진한 화장, 독한 향수를 뒤집어쓴 사람의 수수한 민낯을 본 기분이랄까? 원래 족발이 가진 기본의 가치를 변치 않고 간직한 족발이었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40년 가까이 본래의 맛을 지켜온 세월의 힘이었다. 비가 많이 와서 가격이 오른 탓에 쌈 채소 추가를 1번 이상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맛깔나게 무친 무생채를 곁들여 야무지게 족발 만찬을 즐겼다.      


족발은 변신한다. 부산식 냉채 족발, 창신동 매운 족발, 중국식 마라 족발, 필리핀식 튀김 족발, 태국식 족발 덮밥 등등 쉽게 질리고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파도처럼 밀려온 유행에 슬쩍 발을 담가 보지만 짜거나, 달거나, 진했다. 금세 질렸고 입안에 남은 진한 맛을 헹궈낼 물 또는 술이 필요했다. 변화는 곧 진화고 변신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고 겁을 준 결과물들이었다. 족발 로드의 먼 길을 돌고 돌아 한적한 서교동 골목에서 순박한 족발을 마주하게 됐을 때, 변화=발전이라는 머릿속에 오래 박혀 있던 공식이 깨졌다. 기본을 지키며 흔들림 없이 내 갈 길을 가다 보면 마. 침. 내 닿는 순간은 온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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