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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01. 2022

새벽, 공항 가는 길

뭐든 부럽지가 않은 내가 부러움에 몸서리치는 순간


 

코로나19 재유행의 위험 속에서도 휴가철을 맞은 뉴스에서는 연신 혼잡한 공항의 모습을 보여준다. 뉴스  여행객들처럼 커다란 캐리어만큼 설렘안고 공항을 향하던 순간이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코로나19 시대가   국내선 비행기는   탔지만, 아직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통장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따끈따끈한 신상 명품 가방도, 보송보송한  차도, 반짝반짝한  집을 가진 사람도 부럽지가 않은 나지만 유독 비행기를 타고 남의 나라에 가는 사람들은 부럽다.


(국내선 말고) 비행기를 타 본 게 언제였지?      


출장 때문에 누군가가 끊어주는 비행기가 아니라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100이면 100 나는 목적지로 가는 항공편 중 가장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택한다. 늦은 시간에 떠나는 비행기에 비해 가격은 비쌀지 몰라도 현지에서의 체류 시간을 돈으로 따지면 그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없는 시간과 비싼 돈 들여가는데 몇 푼 아끼자고 현지에서의 시간을 줄이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나의 여행 시작은 공항 리무진의 첫차 시간과 같이 시작된다.      


팬데믹 이전, 경기도인 우리 동네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첫차는 새벽 4시쯤 출발했다.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일찌감치 짐을 싸놓고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혹시 늦잠을 자서 첫차를 놓칠 경우를 대비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럴수록 점점 말똥말똥해지는 정신을 애써 진정시키며 잠을 청해보지만, 대부분은 실패다. 파워 계획형 인간의 불안은 늘 이렇게 불면의 밤을 만든다. 그러다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알람이 울린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시간을 통째로 편집당한 것 같은 허탈감이 밀려든다. 피로감이 가득 담긴 손으로 알람을 끄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냉장고를 열어 최후의 만찬을 준비한다. 평소에는 입이 까칠하고 속이 불편하면 밥때가 되더라도 굳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항으로 떠나는 날은 다르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당분간 마지막 한식이 될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는다. 지금은 불편하지만, 이 순간도 분명 몇 시간 후에는 한없이 그리운 순간이 될 테니까.


먹은 그릇을 정리하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마지막으로 빠진 물건이 없는지 체크 후 아직 잠이 덜 깬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리무진이 서는 정류장으로 향한다. 아직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내 몸집만 한 은색 캐리어를 끌고 걷는다. 걸음마다 불규칙한 아스팔트 길에 캐리어 바퀴가 닿는 소리가 행진곡처럼 퍼진다. 새들도 아가 양도 길고양이도 잘 시간이라 그런지 바퀴 소리가 내 귀엔 더 크게 들린다.      


내가 타는 곳은 출발 기점에서 세 번째 정류장이라 기점 출발 시간에 집에서 나오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탈 수 있다. 캐리어를 수화물 칸에 넣고, 버스에 오른다. 첫차임에도 80%는 채워져 있는 좌석. 성수기건 비성수기건 아니 공항에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나? 매번 놀란다. 빈자리를 찾아 앉은 후, 어깨에 맨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어 담요처럼 무릎에 덮는다. 그리고 이어폰을 꽂고 공항행 전용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마이 앤트 메리의 <공항 가는 길> 같은 원초적인 연관성이 있는 노래부터 여행지마다 도장을 찍듯 한 곡을 주야장천 플레이했던 곡을 모아 놓은 플레이리스트다.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여행지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자동 재생된다. 여행의 흥을 끌어올리기에 이만한 선곡이 없다. 이번에는 또 어떤 곡을 연속 재생을 할까?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며 서서히 밝아지는 창밖에 눈을 박은 채 공항으로 향한다.      


복잡한 도심을 지나 한적한 외곽도로를 한참 달려 영종대교가 보이기 시작하면 굳어 뻐근한 척추를 바로 세운다. 몸을 좌우로 비틀어 허리를 풀어 준 후 벗어 놓았던 겉옷을 입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곧 인천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나는 내릴 준비를 마쳤다. 이제 막 잠이 깬 사람들을 지나 제일 먼저 버스에서 내린다. 발이 공항 땅을 밟자마자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매캐한 매연의 그을음 냄새와 습기를 머금은 아침 냄새가 적당히 뒤섞여 있다. 그제야 내가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든다.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해둔 대로 기계처럼 묵직한 캐리어를 꺼내 수속 카운터가 있는 알파벳 간판으로 향한다.       


이제 막 도시가 잠에서 깰 시간, 전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천 공항 안은 이미 피크를 맞은 오일장처럼 정신이 없다. 일찌감치 집에서 수화물 무게가 적당한지 체크해 왔으니 일단 무인 발권기에서 실물 티켓을 출력한다. 항공사 카운터로 가서 짐을 부치면 일단 2단계 완료다. 여기까지 오면 최소한 내가 이 땅을 떠나 낯선 나라로 떠날 공식적인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리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환전한 후 출국 수속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비행기가 잘 보이는 탑승구 근처 자리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홀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 사실 이게 여행지에서의 관광이나 맛집 투어보다 더 재미있다. 길어야 한 시간 남짓 허락되는 이 시간은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에 잔뜩 들떠 발걸음마저 통통 튀는 아이, 오래간만에 떠나는 여행을 맞아 새 옷과 새 신발로 멋을 낸 어르신, 출발 전부터 여행 로그를 찍는지 한시도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는 연인, 전날 결혼식의 피곤함이 그대로 찌든 얼굴로 꼭 붙어 의자에서 졸고 있는 신혼부부, 보기만 해도 숨 막힐 듯 꼭 조인 넥타이와 수트 차림 비즈니스맨, 어디를 가든 큰 목소리와 맞춰 입은 옷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단체 여행객 등등 목적지는 같아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공항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 공항을 채운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발걸음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탑승 수속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효율의 민족, 빨리빨리의 민족 대한민국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고 줄이 1/3 정도로 줄어들 때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어차피 비행기는 내내 작은 의자에 결박당한 채 있어야 하니 조금이라도 내 몸에 자유를 주기 위해 뭉그적거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보통의 날이라면 아직도 이불 위를 뒹굴 이 시간, 새벽 공항에 있는 내가 얼떨떨하다. 갈 때마다 익숙한 듯 어색하고 신기한 공간, 인천 공항에 나는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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