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할 수는 있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까똑! 절친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 알람이 울렸다. 발신자는 ‘람쥐’. 똥그란 눈과 자그마한 체구, 그리고 부지런한 성정이 꼭 다람쥐를 닮은 친구다. 일찌감치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그 바쁜 와중에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공부하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 계약하러 감.
갑자기? 뭔데?
9월에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오픈해
우와! 멋져! 대단! 축하해.
람쥐가 곧 사장님이 된다는 소식에 친구들의 축하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얼마 전까지 창업 관련 수업을 듣는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어떤 분야가 유망한 지 관련 업계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람쥐가 언젠가 사장이 될 줄 알았지만, 그 꿈이 이토록 빨리 이뤄질지는 몰랐다. 불도저 같은 실행력에 우리는 일제히 감탄했다. 한바탕 시끌벅적한 축하의 인사가 이어진 후 퇴근, 저녁 식사 준비, 운동, 아이 하원 등 자신의 임무 완수를 위해 떠나면서 대화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나 역시 잠들기 전, 오늘 하루의 수다가 담긴 채팅방을 다시 둘러보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근데 아이스크림 성수기는 여름 아닌가?
9월이면 여름 끝이잖아?
여름 지나고도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나?
동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보면 사람 별로 없던데... 장사되나?
무인 가게마다 도둑 잡는 경고문 가득하던데 관리하기 어렵지 않나?
걱정 만수르다운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물론 문구, 커피, 밀 키트, 셀프 세탁방 등등 각종 무인 가게들이 동네에 포화상태다. 지날 때마다 무심히 안을 들여다봐도 사람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우후죽순 무인점포가 생긴다는 건 이유가 있겠지? 인건비가 워낙 비싸니 여러 가지 상황들을 따져 봐도 무인 매장 운영이 득이 되는 거겠지? 숫자에 빠삭하고 치밀한 성격의 ‘람쥐’는 일찌감치 이 사항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위험 가능성까지 염두했을 사람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수 없이 시뮬레이션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 섣부른 걱정을 전할 필요가 없다. 선택하고 결정한 사람에게 제삼자의 조언은 김이나 빼는 잔소리다. 숫자에 약해 사업은 꿈도 못 꾸는 쫄보는 ‘람쥐’의 선택이 그저 대단하고 대견할 뿐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주저하게 된다. 보통은 두려움에 지는 편이고, 어쩌다 시도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신기하게 두려움에 지기보다 시도의 횟수가 늘었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그런 면에서 나이를 먹어 가면서 좀 더 과감해졌다. 내 변화의 시작은 넘어지면 재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는 경험들 덕분이었다. 한 번 넘어지면 영원히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게 아니라 흙이 좀 묻어도 털면 되고, 상처가 생겨도 언젠가는 아문다는 기억들이 오래 묵은 두려움들을 지워줬다. 넘어진 건 순간이지 영원히 땅에 처박힌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파워 워킹으로 걸어 나온 사람이 없듯 모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야만 걸을 수 있다. 넘어지기를 두려워한다면 평생 온전히 제힘으로 걷기는 불가능하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당황할 수는 있겠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최근 즐겨 듣게 된 팟캐스트 진행자의 유독 여운이 길었던 말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뒀다. 그래 난 당황한 순간을 무섭다고 착각한 게 분명했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은 돌발상황의 연속이다. 아무리 시뮬레이션해도 막상 실행하면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은 폭우처럼 쏟아지고 그 순간 담대하기란 어렵다. 특히 나처럼 개복치 심장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더욱. 하지만 세상에는 통제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 아니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일은 통제 불가능이다. 두려움에 일단 백기부터 흔들고 봤던 과거의 내가 그걸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현실이 될 수 없는 망상을 굴리다 머릿속에서 뻥 차 버렸다. 이미 지난 일, 후회하지 말고,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이나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