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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02. 2022

내 다리는 단무지 다리

내 발목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두 친언니는 평생 내 다리를 ‘단무지 다리’라고 놀린다. 발목의 굴곡이 없이 종아리부터 일자로 떨어지는 모양새가 단무지를 닮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동생 놀리는 게 인생의 낙인 언니들이 야속해서 어릴 때는 악을 쓰고 울었다. 유아기에는 보통 ‘무발목’이 흔하지만 커가면서 발목은 굴곡이 생기지만 나에게 그런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다리가 부끄러워진 건 단발머리 중학생 때였다. 요즘처럼 바지와 치마를 혼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라떼 교복’은 오직 치마뿐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지정한 하얀 양말까지 신어주면 나의 굴곡 없는 다리는 한없이 볼품없어졌다. 친구들이 앞머리에 온 신경을 쓰던 때, 나는 어떻게 하면 발목이 가늘게 보일까? 고심하며 양말을 고쳐 신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발목 콤플렉스에 젖은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바지가 아니면 아예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시선이 발목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사람의 뇌는 자신에게 없는 걸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걸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 유독 발목에 시선이 자석처럼 붙는 건 여전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얇은 발목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접어 올린 바지나 치마 아래로 핑크빛 복숭아뼈를 품은 가느다란 발목이 보일 때면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눈이 반짝였다. 발목에 스트랩을 채우는 스타일인 메리제인 슈즈가 유행해도 무 발목 인간에게는 그저 남의 떡이다. 통통한 발목에 힘겹게 스트랩을 채우면 숨 막힐 듯 발목이 조인다. 스트랩의 위치가 발목을 강조해서 통통한 발목이 더 강조되니 내 다리에 메리제인 슈즈는 감히 시도도 못 했다. ‘단무지 다리’에서 탈출해 보고자 발목 운동도 해 보고, 매끈한 다리를 만들어 준다는 계단 오르기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건 살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발목은 강인한 뼈와 탄탄한 근육으로 똘똘 뭉쳐 있다.   

   

수 없이 거부하고 부정했던 나의 ‘단무지 다리‘를 인정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지 어언 NN 년이 흘렀을 때의 일이다. 평소처럼 친구와 수다를 떨다 유독 가는 친구의 다리를 보며 별생각 없이 ’ 부럽다 ‘고 한마디 툭 던졌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오히려 자기는 얇은 발목이 콤플렉스라고 했다. 발목이 가느니 분명 보통 사이즈인 종아리가 상대적으로 두꺼워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걸핏하면 발목을 삐끗하기 일쑤고, 유명하다는 정형외과며 한의원을 순례하며 발목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도톰하고 튼튼한 너의 일자 발목이 부럽다고 했다. 평생 짐 같았던 단무지 발목이 이런 대접을 받을 날도 오다니 놀라웠다. 이 빈틈없이 꽉 찬 발목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는데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니... 친구의 말에 평생 골칫덩이였던 단무지 발목이 다시 보였다. 밉고 싫었던 굴곡 없는 단무지 발목이 없었다면 아마 좋아하는 등산과 산책도 불가능했을 거다. 튼튼한 단무지 발목이 삶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어디 발목뿐일까? 세상 모든 것에는 동전처럼 분명 하나인데도 양면이 존재한다. 생각 많은 사람은 신중한 사람이고, 급한 성격은 추진력 강한 성격의 또 다른 말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감각이 섬세한 사람일 확률이 높고, 귀가 얇은 사람은 수용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건 하찮고, 남이 가진 것만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늘 한쪽만 바라보고 부정적인 결론만 품고 산다. 마치 과거의 나처럼. 나를 향한 불만, 남을 향한 부러움이 차오를 때면 지그시 발목을 내려다본다. 그곳에 평생 나를 지탱해 주고, 묵묵히 나를 바로 세워줬던 단무지 발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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