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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07. 2022

징징대고 싶지만 징징대긴 싫어

징징거린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잘 먹고, 잘 자기>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나는 이 구역의 ’불효킹‘이었다. 주는 대로 우걱우걱 먹지도 않았고, 깨작거리다 혼나서 눈물 섞인 짠 밥을 꾸역꾸역 삼키는 게 일상이었다. 통잠을 자는 일도 거의 없었다. 밤낮이 바뀌어 자야 할 때 안 자고, 자지 않아야 할 시간에 잤다. 이런 나를 재우기 위해 엄마는 포대기에 어린 나를 업은 채 무릎 꿇고 엎드린 채로 조각 잠으로 때웠다고 증언했다.      


그럼 잘 먹지도, 잘 자지도 않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 시절 내가 제일 잘했던 건 ’징징거리기‘였다. 아이 넷을 키우며 밥벌이하기 바쁜 엄마 옷자락을 붙들고 부족한 관심과 사랑을 달라고 징징거렸다.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이것을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몰랐던 나는 일단 징징거리고 봤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폭풍 꿀밤을 부르는 키우기 까다로운 아이가 분명하다. 그래도 큰 체벌을 하지 않고, 이만큼 키워주신 부모님이 감사할 따름이다. 대부분 어릴 때는 징징거리다가도 언어 표현이 풍부해지고 부모가 적절히 반응해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나 역시 어른으로 커가며 서서히 징징거림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징징거림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상대방의 화와 짜증이라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후에도 유아기 징징이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로와 공감을 바라며 하소연을 가장한 ’징징‘을 내뿜는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 방안을 같이 고민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같이 욕해줘 ‘라고 징징댄다. 아니 정확히 해결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100% 상대의 과실임을 인정해달라고 관계도 없는 제삼자에게 종용한다. 한때 징징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징징 장인‘의 눈에는 그게 보인다. 한참 얘기를 듣고 있으면 ’ 그렇구나 ‘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선뜻 누구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친분과 옳고 그름은 별개의 문제니까. 그래서 징징 모드가 켜지면 당사자 몰래 조용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스킬을 시전 한다.


완전한 내 편이 되어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해도 다 들어주길 바라지만, 그런 존재는 아마 없다. 나조차도 내 생각과 행동이 의아할 때가 있으니 나 아닌 누군가가 100% 내 심정을 이해하고 동조해 주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우리는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는 성인이 아닌가? 내 안의 어린이가 튀어나와 울고 떼쓴다 해도 나를 책임지고 달래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감정과 기분을 내가 컨트롤해야 하고 내가 한 행동에 책임져야 하는 완연한 어른이니까...라고 자신을 애써 달랜다.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징징이일 거다. 하지만 24시간 365일 징글징글한 징징이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성실하게 적립한 징징거림이 말이나 감정으로 불쑥 튀어나오지 않도록 이렇게 글로 징징거린다. 징징의 한계점에 차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나오기 전에 글로 징징거려줘야 엉뚱한 곳에서 징징거림이 삐져나오지 않는다. 글로 징징거릴 때의 장점이 있다. 찌질한 건 별반 다르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한 번 굴려 모난 곳을 둥글게 다듬어진다. 또 글로 써서 퇴고하면서 정제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징징거리는 감정을 바라보면 의외로 별거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게 뭐라고 징징거릴까? 징징이라는 미성숙한 방식으로 내 감정을 뒤덮는 게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징징거리고 싶지만 징징거리고 싶지 않다. 감정은 순간이고 문제는 해결해야 끝이 난다. 열심히 징징거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대 징징거리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쓴다. 글을 쓰며 모난 생각을 다독이고 날 선 감정을 추스른다. 말로 내뱉어 봤자 나만 개운한 징징거림 대신, 상대방에게 증폭되는 짜증 대신, 해결되지 않는 칭얼거림 대신 글을 쓴다. 징징의 시대가 저물고 맨 정신이 돌아왔을 때 들춰 보면 분명 이불속에서 하이킥 할 글이지만 이렇게 해소해야 오늘을 온전히 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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