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Nov 23. 2022

숫자로 보는 2022년 연말 결산

올해 이룬 것과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것


매해 이맘때가 되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럴 때마다 연초에 세워둔 계획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가늠해 본다. 계획형 인간답게 세워둔 계획은 촘촘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초과한 부분은 ‘잘했다 나 자신!’하고 칭찬하고, 모자란 부분은 ‘뭉그적거리지 말고 얼른 일어나!’라고 무거운 엉덩이를 찰싹 때린다. 슬슬 연말 결산이 필요한 이 시점,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말하고 싶다. ‘제겐 아직 1달 반이 남았습니다.’라고.      


27번의 등산은 성공

2021년 최고로 잘한 일이 ‘요가‘를 시작한 거라면, 올해 가장 잘한 일은 ’ 등산‘을 시작한 거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중년이라면 등산에 끌리는 게 어쩌면 정해진 순리였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처음 산에 간 게 3월. 등산 기록 앱으로 내 산행을 기록한 게 4월. 그때부터 날씨만 허락한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산에 올랐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는 덕에 마음만 먹으면 큰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산에 갈 수 있었다. 등산 붐이라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 첫차를 탔다. 새벽 어스름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한적한 산에 올랐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을 밟는 것처럼, 앞서간 이의 발자국이 없는 조용한 산을 오르다 보면 먹고사니즘에 지친 몸과 마음에 차분한 에너지가 채워졌다. 왜 여길 기어이 오르겠다고 나왔나 택한 나 자신을 원망하며 타오르는 허벅지를 끌어올려 오르다 보면 결국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어 준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기 위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고단백 두유와 단백질 바를 우걱우걱 씹으며 천천히 생각하면, 산 아래에 있을 때 무겁게 가슴을 눌렀던 고민들은 작고 하찮은 것일 뿐이란 걸 알게 됐다.


그 재미에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등산 기록 앱에는 이번 주 기준으로 총 27번이라는 숫자가 찍혔다. 1년이 52주니까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산에 간 셈이다. 앞으로 한 달 반이 남았으니 27+α가 될 거다. <2022년 To Do List>에 아예 적혀 있지도 않았던 등산. 내년에 할 건강검진에서 꾸준한 요가와 등산의 시너지가 어떤 숫자로 돌아올지 몹시 궁금하다.  


152권의 책 읽기는 초과 달성

책에 관해서는 늘 ’ 작년보다는 1권이라도 더 읽자’는 단순한 목표가 있다. 그런 면에서 책 읽기도 숫자로는 이미 초과 달성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소설이나 번역서보다 국내 작가들이 쓴 에세이나 사회과학, 심리학 분야 책을 파는 편식 문제는 마음의 짐이다. 그래도 취향이 아닌 책을 꾸역꾸역 읽다가 뭐라도 흥미 있는 책을 끊임없이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읽는 중이다.


글밥 많은 책이 눈에 안 들어올 때는 일본 작가들의 가벼운 그림 에세이에 파고들고, 파스타에 빠졌을 때는 채소로 만드는 파스타 요리책을 탐독했다. 부족한 체력을 요령으로 보완할 수 있진 않을까 싶어 등산 기술에 대한 책도 읽었다. 글이 안 풀리면 글쓰기의 괴로움에 대해 토로하는 유명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대문호도 고민하는 건 같구나 싶어 이상한 안도감을 강제 주입하기도 했다.


한창 셀프 캠페인 중인 <스마트폰과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갈 곳을 잃은 눈이 책에 가 닿는다. 하지만 낯선 단어나 인물 검색, 책에서 발견한 다른 책 이름을 기록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켰다가 샛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샛길로 가더라도 할 일만 하고 빨리 되돌아오면 되는데 문제는 한 번 샛길로 빠지면 또 스마트폰 감옥에 갇힌다는 점이다. 단순히 책의 권수뿐만 아니라 이 딴짓의 시간을 줄이고 집중도를 높이는 게 내년 독서 계획의 핵심 포인트다.      


3번 이상 비행기 타기는 내년으로 이월

올 초만 해도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고 각종 규제가 풀려갈 테니 작년보다는 자주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최소 3번 비행기 타기를 목표로 잡았었다. 하지만 1월 초에 생일 기념 여행으로 제주에 다녀온 이후 더 이상 비행기 탈 일이 없었다. 주변에 일이나 휴가로 이미 해외에 다녀온 지인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이 목표가 가슴 한쪽을 쿡 찌른다.


평소 프로젝트를 끝내면 그간 고생한 나님을 위해 비행기를 태워주는 게 프리랜서 삶의 낙이자 루틴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많은 준비가 무너지고, 다양한 계획들이 어그러졌다. 더없이 마음과 통장을 졸라 매야 하는 시기였다. 가깝게는 국내 경기 악화, 멀게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부들부들 푸틴!!)가 몰고 온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비효과로 번졌다. 앞으로 가기 바쁜 내 발목을 잡다 못해 덮쳐 버렸다. 거센 바람 앞의 연약한 촛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쉽게 꺼지지는 않았다.


비행기 타기 부분은 비록 계획했던 3번에 못 미쳤다. 하지만 손을 놓고 싶은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크게 심호흡 한 번 하고 얼른 무거운 마음을 털어 버린 후 다음 스탭을 준비할 깡이 생겼다. 포기는 쉽고, 절망은 더 쉽다. 쉬운 길을 포기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고 그쪽으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고 있다. 그 움직임이 날 어디로 데려다 줄지 알 수 없다.


여러 방향으로 각을 재보지만 아무래도 남은 2번은 내년으로 미뤄야 할듯 싶다. 올해 못 이뤘다 해도 괜찮다. 내게는 올해만 있는 게 아니까. 2022년의 나보다 2023년의 나는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튼튼 한 사람이 되어 있을테니까. 그때 가도 충분하다. 아니 더 잘 누릴 수 있을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가 바빠지는 계절,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