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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30. 2022

유일한 준비는 ’하고 싶은 마음‘

하지 않아야 할 100가지 이유 찾기는 그만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인터넷 레시피를 뒤진다. 여기서 포인트는 티브이에 자주 나왔던 유명 요리 전문가의 이름을 넣어 검색한다는 점이다. 날고 긴다는 요리 인플루언서도 있지만 그의 레시피를 콕 집어 택한 이유는 재료 때문이다. 정향이나 차이브, 치킨스톡이 없어도 제법 맛이 난다. 이름도 낯선 향신료와 부재료가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집 냉장고의 사정은 그리 세계화되지 않았다. 레몬즙이 없으면 식초로, 굴 소스가 없으면 간장과 설탕을 조금 더 추가하면 똑같은 맛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맛이 완성된다. 요리의 ’ 요‘자도 몰랐을 때는 레시피를 검색했을 때 똑같은 이름의 재료가 없으면 아예 시도하지도 않았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예상한 맛이 나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가 완벽한 결과를 낳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준비에 대한 강박은 단순히 요리에 그치지 않았다.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바른생활 어린이는 오래된 컴퓨터처럼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부팅이 오래 걸리는 어른이 됐다. 새로운 것과 마주했을 때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한 발짝도 떼지 않았으면서 머릿속에 제멋대로 완벽한 결과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했을 때의 내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가 두려웠다. 실패자라고 도장이 찍힐까 봐, 낙오자라고 비웃을까 봐 무서웠다. 그때 내가 시도했던 제일 쉬운 방법은 ’ 하지 않아야 할 100가지 이유‘ 찾기였다. 결과에 상처받을 내가 빤히 보이니 얕은 자기 방어 법이었다. 시간이 많이 들 거 같아서, 투자 대비 효과가 미미할 거 같아서, 나랑 안 맞을 거 같아서, 실패하면 여파에 오래 아파할 거 같아서 등등 100개도 우스웠다. 난 하지 않을 이유 찾기의 달인이었다. 그렇게 100개도 넘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나면 무슨 일이든 흥미가 사라진다. 기세 등등해서 시작해도 될까 말까인데 일단 김부터 빼는 작전이랄까? 그 작전은 멘탈 약한 나를 보호했을지 모르지만, 경험도 결과도 가진 게 없는 가난한 나를 만들어 갔다.      


’아마 안 될 거야 ‘라는 표어를 마음속에 품고 시작했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무슨 일이든 튼튼한 벽돌집을 짓는 자세로 임했다. 심혈을 기울여 자재를 고르고, 터를 닦고, 골조를 올리고,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리는 자세로 결과물을 향해 달려갔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집은 완성되기도 전에 허물어졌다. 내가 놓친 게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금세 짓고 쉽게 허무는 가건물인데 내 멋대로 벽돌집을 지으려 과한 열정을 쏟은 거다. 완성되기도 전에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우는 대신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일한 준비는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현주 작가의 <일하는 마음> 중     


불안이 많은 계획형 인간에게 완벽한 결과를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가 필수였다. 목표 설정, 재료 준비, 결과 시뮬레이션, 실패 시 대비 방안 등 철저한 준비를 위해서는 수 없는 고민과 시나리오 설정이 필요하다. 준비를 위한 준비만 하다가 진을 빼곤 했다. 하지만 완벽히 준비된 때란 없다. 준비만 하다가 시기를 놓쳐 버리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필요한 유일한 준비는 ’하고 싶은 마음‘이면 충분했다.  


여전히 새로운 것 앞에서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예전만큼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하지 말아야 할 100가지 이유를 찾는 열정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치환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내게 낙오자 도장이 찍히는 게 아니라는 경험도 있다. 준비만 하다 나를 지나쳐 버린 기회의 뒤통수를 보며 뒤늦게 아쉬워하는 대신 일단 기회가 오면 잡고 본다. 세상 모든 일은 시작이 있어야 결과가 있고, 위기는 곧 기회이자 배움의 시작이라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알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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