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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Dec 07. 2022

초고를 보여준다는 건

내게는 조약돌, 누군가에게는 바윗돌

출판의 ‘ㅊ’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처음 책을 냈을 때, 모든 게 신기했다. 제안받고, 미팅하고, 계약서를 쓰고, 원고를 쓰고, 교정지를 주고받고, 표지와 제목을 함께 고심하고, 서문을 쓴 후에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이 나온다. 모든 게 처음이라 더듬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모르는 건 담당 편집자에게 묻기도 하고, 출간 선배들의 조언도 주워듣기도 하고, 다른 책이나 영상을 통해 봐 왔던 출간 과정들을 흉내 내며 최대한 비슷한 방법으로 따라 했다. 초고가 나왔을 때 믿을만한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피드백을 부탁했다. 앞서 출간했던 작가들이 썼던 흔한 방법이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이미 거짓말 좀 보태 수십 번은 더 본 내 글이 내 눈엔 더 이상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인 렌즈를 완벽하게 뺄 수는 없겠지만 나보다는 객관적인 눈으로 봐주길 바랐다. 과연 이 글이 한 권의 책이 됐을 때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부족한 부분은 뭔지, 채워 넣을 것은 뭔지 조언해주길 기대했다.  

   

책의 초고를 봐준다면 누구에게 부탁하는 게 좋을까? 기준은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웠다. 평소 글쓰기나 책을 좋아하면서도 무슨 말을 해주건 내가 곡해해서 듣지 않고 달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주변의 몇몇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랐다. 언제나 나를 향해 꿀보다 달콤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던 사람들이었다. 분명 쉽지 않을 숙제를 떠넘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조심스럽게 의사를 물었다. 모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바쁜 와중에도 약속한 시각에 맞춰 피드백을 보내줬다.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피드백을 보니 고마워 눈물이 찔끔 났다. 그 피드백을 거름 삼아 다듬다 보니 다음 교정지에는 좀 더 매끈한 글로 채워졌다. 그렇게 일기 같은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고 한참 후의 일이다.     


초고 봐달라고 했을 때,
솔직히 나 좀 부담스러웠어  


예상치 못해 날아든  말에 불꽃 따귀를 맞은   볼이 얼얼했다. 초고를 읽어준 친구가 이제야 말할  있다며 초고를 받아 들고 난감했다는 양심 고백을 했을 ,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선뜻 수락했는데 초고를 들춰 보고 나서 ‘내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할까?’라는 부담감이 컸다고 했다. 세심한 성격에 적잖이 속앓이 했을 과정들을 듣고 나니, 미안함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쳤다. 내가 던진 초고의 무게가 조약돌이었다면 상대에게 전해졌을 때는 큼직한 바윗덩이로 변해 있었다. 초고를 보여준다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명동 거리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이 되기에는 한참   날것의 글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깝기에  부끄럽고, 조심스럽고, 민감해진다. 초고를 봐주기가 부담스러웠다는  말을 듣고,  이상 초고 피드백을 부탁하지 않게 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서 어떻게든 결론을 냈다. 상대방이 부담 없이 봐주길 바랐지만, 그건  욕심일 뿐이니까.  


말과 행동을 하기 전, 습관처럼 ‘역지사지’를 생각한다.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내가 이해 안 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초고를 봐달라고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도움이 될만한 피드백을 할 거라는 건 내 기준일 뿐이었다. 아무리 상대방을 생각한다고 해도 나는 상대방이 될 수 없다. 내가 좋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더라도, 상대방에게 다르게 가닿았다면 그건 100% 좋은 결과가 될 수 없다. 내가 조약돌인 줄 알고 던졌던 말과 행동이 바윗돌로 느껴졌을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던진 돌이 조약돌이 아니라 바윗돌이었다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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