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반복이 쌓여서 완성된 결과의 맛
끼니는 김밥 헤븐에서 해결하더라도 커피와 디저트에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개별 단가는 어마어마하지만 내게는 일종의 ‘기분 치료제‘였다. 남들 다 산다는 명품 가방이나 해외 리조트 여행에 비해 소소한 비용을 들이고도 확실한 효과를 줬다. 병원 가는 대신 여유가 있을 때는 악착같이 국내외의 이름난 디저트 명소를 찾아다녔다. 공주의 잃어버린 보석 같기도 하고 미치광이 예술가의 작품 같기도 접시 위의 디저트를 마주하는 순간, 내 안의 흑염룡들이 단잠에 빠진다. 한 입 먹는 순간 디저트가 머금은 지방과 당분이 입에서 폭발한다. 삐죽삐죽, 거칠거칠 날 선 감정들이 초고가 에센스를 바른 듯 부드러워진다.
10여 년 전, 뚜벅이들의 귀에 뷰 맛집이자 신기한 케이크 맛집에 대한 소문을 들어왔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도 걷고 또 걷다 숨이 턱까지 찰 때쯤 남산 허리에 있던 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티브이에 자주 얼굴을 비추던 유명 셰프가 새로 오픈한 하이엔드 퀴진. 함께 운영하는 카페의 디저트도 퀄리티가 수준급이라고 했다. 코스 요리를 먹을 만큼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 레스토랑 위층의 루프탑 카페로 직진했다. 그곳에서 처음 크레이프 케이크를 만났다. 사진으로 보고 이름을 들었던 디저트였지만 실물 영접은 처음이었다. 생크림을 얇게 펴 발라 얇은 프랑스식 전병(크레이프)을 겹겹이 쌓아 올린 케이크. 마치 겹겹의 속치마를 덧입어 우아하게 부풀린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프랑스 공주를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문제가 있었다. 유명하다고 해서 주문해서 받아 들긴 했는데 이 케이크를 어떻게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잘라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한 겹씩 벗겨 먹어야 하는지. 모를 때는 일단 조용히 주변을 관찰한다. 소문난 시그니처 메뉴여서인지 모든 테이블에 같은 케이크가 올라와 있었다. 테이블 주인들의 정갈하게 세팅된 머리, 의자에 팽개쳐 둔 명품 가방, 반짝이는 스톤을 얹은 네일 아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김밥 헤븐에 가듯 부담 없이 고급 음식점에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큰마음을 먹어야 오는 사람이 아니라 동네 마실 나오듯 고급 식당에 오는 자들이었다.
자존심은 넘치지만 아는 게 없는 ’ 흉내 내기 천재‘는 흘깃 가자미 눈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먹는 방법을 훔쳐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역시 신선한 모양새만큼이나 신선했다. 고소한 달걀 맛과 달콤한 바닐라 향이 어우러진 촉촉한 크레이프 사이로 스며 나오는 부드러운 생크림이 입안에서 맛의 대축제를 벌였다. 그간 먹어 온 스펀지케이크와는 차원이 다른 보드라움.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크레이프 케이크지만 그날 경험한 맛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이후 한동안 케이크 선물은 무조건 크레이프 케이크였다. 내가 느낀 맛의 감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 크레이프 케이크를 마주한 사람들은 선뜻 손을 대지 못한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탕수육 부먹파 vs 찍먹파, 시리얼 눅눅파 vs 바삭파 처럼 한 때 크레이프 케이크 먹는 법에 대한 분분한 논쟁이 있다. 세로로 잘라먹느냐, 포크로 돌돌 말아 한 겹씩 먹느냐. 각자 선호하는 방식을 두고 온 오프라인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정답은 없다고 했다. 여러 겹 쌓여있는 크레이프 케이크를 한 덩이로 잘라먹으면 고소한 생크림이 진하게 느껴지고, 한 겹씩 포크에 돌돌 말아먹으면 반죽의 쫄깃함을 느낄 수 있다.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 취향에 따라 원하는 방식을 택하면 되는 취향의 문제다.
얼마 전, 오랜만에 크레이프 케이크와 마주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도 흔히 파는 크레이프 케이크. 추억의 노래가 된 지나간 유행가를 다시 재생하는 기분으로 주문했다. ’ 벗겨 먹기파 ‘가 아닌 강경 ’잘라 먹기파’답게 포크를 정직하게 세워 크레이프 케이크를 갈랐다. 미끄러지듯 포크가 케이크 안을 파고드니 켜켜이 쌓인 단면이 보였다. 파티시에가 정성스럽게 한 장 한 장 부쳐냈을 하늘하늘한 노란 크레이프. 그 사이, 하얀 생크림이 접착체처럼 발라져 있었다. 스무 장쯤 쌓여야 제대로 된 크레이프 케이크라는데 종잇장만큼 얇은 크레이프를 쌓아 올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을까?
크레이프를 한 장 올리고 그 위에 크림을 바르고 다시 크레이프를 쌓는 단순 반복. 이 과정 없이 완성되는 크레이프 케이크는 없다. 오늘 하루, 정성을 다해 살아야 내일이 오고 그런 날들이 쌓여 일주일이 되고, 다시 연말을 맞게 되는 것처럼. 세상 모든 일은 지루한 반복을 견뎌야 완성된다. 하루아침에 뚝딱 얻어지는 결과란 없다. 근육도, 글쓰기도 아니 세상 모든 일은 꾸준한 시도가 쌓여야 이루어진다. 하는 동안은 이걸 왜 하나? 되긴 하는 걸까? 과연 효과가 있기는 할까? 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고, 나의 노력과 정성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 지겹고 지쳐도 해내는 수밖에. 한 겹 한 겹 차분히 쌓아 올리는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당장은 납작해 볼품없어 보여도 꾸준히 실력을 쌓고,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봉긋 솟아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