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마음을 다독이는 법
강남에서 탄 지하철이 서울 끄트머리이자 경기도의 시작점에 닿을 때가 되면 나는 1호선으로 갈아탄다. 지친 몸을 이끌고 환승을 위해 지상 플랫폼으로 올라서니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분명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흐렸던 하늘에서 면봉 머리만 한 눈송이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하에 있을 때만 해도 표정은 사치라는 듯 얼음처럼 굳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묘한 설렘이 퍼졌다. 그깟 눈이 뭐라고. 분명 일기 예보에서 저녁에 눈이 올 거라는 예보를 듣는 순간, 험난한 퇴근길이 될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막상 마주한 눈에 다들 마음이 녹아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핸드폰 카메라를 켜 플랫폼 건너편, 나란히 늘어선 가로수 위로 쏟아지는 눈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워 잔뜩 신난 어른이들의 뒤통수를 한참 쳐다봤다. 내리는 눈과 그 눈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 그 모습은 마치 슬로모션 모드라도 켠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현실의 괴로움, 차가움은 잠시 잊고 다들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설렘이 얼굴 가득 피어났다.
요즘 과속하는 기분으로 산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다면 분명 찰칵하고 찍힐 수준이다. 내 몸과 마음의 속도는 스쿨존 속도 제한인 시속 30km 수준이 적당하다. 그래야 원하는 목적지로 제대로 갈 수 있고, 갑자기 뛰어드는 문제들도 알맞게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이 내 속도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가 낼 수 있는 속도대로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도 정하지 못했고, 불쑥 뛰어드는 고라니나 멧돼지를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는데 쫓기듯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한계 이상의 속도로 달리며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산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고, 남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마음이 무겁다. 남들은 저 멀리 목적지에 도착해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데 내 딴에는 아무리 속도를 내도 목적지에 닿기 힘들다.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다그치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고 막막하다.
얼떨결에 치타들의 경주에 낀 나무늘보의 기분을 매일매일 느낀다. 나무늘보가 숨이 헐떡일 정도로 쫓아가 보지만 치타의 꼬리 끄트머리도 닿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 맥이 탁 풀린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언제쯤 내 호흡으로 갈 수 있을까?‘를 가늠해 보지만 아직 뾰족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을 ’ 열심‘과 ’ 최선’으로 덧칠해보지만 그럴수록 가슴에 까만 구멍이 점점 커진다.
한 주를 마감하는 지친 금요일 퇴근길, 슬로모션을 켠 것처럼 느릿느릿 내리는 눈을 각자의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하늘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숨 쉴 틈 없이 바쁜 날들을 살면서도 이렇게 가끔 깜짝 선물처럼 도착한 함박눈을 보며 숨통을 트며 사는 거라고. 빨리 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듯 빠르게 돌아가는 현생 속에서도 악착같이 나만의 일시 정지 버튼을 찾아 누르고 비현실로 잠시 도망가서 에너지를 채우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눈으로 인한 연착 때문이었을까? 시간표에 적힌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전철에 올라탈 때쯤에는 면봉 머리만큼 작았던 눈송이가 살집을 불려 손톱만큼 커졌다. 녹차 케이크 위에 인심 좋게 뿌린 슈가 파우더처럼 나무 위에 두툼하게 눈이 쌓였다. 작은 눈송이들이 쌓여 나무를 뒤덮었다. 선로 위에도, 지붕이 없는 플랫폼 위에도 차근차근 내려앉았다. 눈은 보통의 비처럼 수직 낙하하지 않는다. 눈이 떨어지는 속도는 비 내리는 속도보다 느리겠지만 눈은 마음껏 바람을 타고 흩날리다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느긋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으로 속도의 치열함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내려앉을 곳이 어디인가 생각해 본다. 분명 만지면 차가울 텐데 묘하게 포근한 눈을 보며 조급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