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자랑이 되면 생기는 일
늦은 저녁 지친 떡이 된 몸을 끌고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이불 위에 몸을 내던지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편히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했으니 일단 화장실에 가 묵은 숙제를 해결하고 손을 씻었다. 그 사이 엄마는 빛의 속도로 식사를 준비했다. 엄마가 퍼 놓은 밥을 절반 덜어 반납하고, 꾸역꾸역 식도로 밀어 넣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내가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엄마가 마음을 놓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의 하나뿐인 혈육, 이모였다. 추운 날씨에 감기에는 안 걸렸는지 간단한 안부 인사가 오가고 이모가 전화 건 목적을 슬쩍 내비쳤다.
**이가 은행 지점장 됐어
오랫동안 은행에서 성실하게 일해 온 이종사촌 오빠가 지점장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가족의 경사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언니의 자식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엄마는 본인 자식이 지점장이 된 것처럼 기뻐했다. 옆에서 듣는 나에게도 전화기 너머로 오가는 두 자매의 신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려운 살림에 네 명의 자식을 사업가, 국회 공무원, 직업 군인, 은행 지점장으로 키운 이모. 누가 봐도 자식 농사 번듯하게 지은 사람이었다. 한바탕 환호와 축하가 오간 후 전화를 끊은 엄마는 묵묵히 싱크대를 정리했다.
자식 자랑 배틀은 부모님들에게는 일종의 구강 레포츠다. 대놓고 하는 건 멋이 없다. ”아휴~ 힘든데“ 혹은 ”지가 알아서“라는 기본 문장을 튼튼한 쿠션으로 깔고 시작한다. 힘든데도 기어코 노력하더니 결국 자랑스러운 결과를 얻었다는 위인전스러운 전개. 얼떨결에 얻어지는 결과란 없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자식 자랑하는 부모님들을 보고 있으면 귀엽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사람이 된 것도, 남들 다 한다는 결혼을 한 것도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닌 사람에게 남의 집 자식 자랑은 무거운 숙제처럼 다가온다. 과연 나는 엄마, 아빠의 어깨를 쫙 펴줄 만큼 자랑스러운 사람일까?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내 몫의 삶을 알아서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모님께 미안해진다. 뭐라도 끄집어내서 엄마의 총알을 채워주고 싶다.
엄마, 그래서 엄마도 자식 자랑 좀 했어?
막내딸이 상금 500만 원 주는 상 받고 곧 책도 나온다고 하지.
그럼 일찌감치 했지.
나이 들면 다 자식 자랑하는 낙으로 살아
이모며 이모네 오빠, 언니들이 다 놀라더라.
지난 연말, 인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받아 들게 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소식. 아는 사람들이야 ‘와~’하고 놀랄 일이지만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뭐?‘ 싶은 일이다. 현실에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멋쩍다. 얼마의 경쟁률을 뚫고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상을 했다는 사실을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자식 자랑 배틀에서 할 말이 없어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는 게 아니라 엄마도 어깨를 펼치며 할 얘기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감사하다.
누군가의 자랑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상대방에게는 자신이 이룬 성과가 아닌데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 반면 나에게는 오히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바닥난 기운을 채워지는 일이다. 누군가의 자랑이자 사랑인 사람이 된다는 건 나를 놓지 않게 만드는 끈이 생기는 일이다. 무너져 가는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된다. 멈추고 싶은 나를 다시 뛰게 만드는 일이다. 손을 놓고 삐딱하게 살고 싶다가도 내가 누군가의 자랑이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다시 무릎에 힘을 빡 주고 일어서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실망 말고 자랑이 되고 싶어서. 그래서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