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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01. 2023

맥모닝은 그저 거들뿐

맥모닝을 향한 양가감정 : 뿌듯함과 죄책감 사이

그런 날이 있다. 아침 일찍 눈을 떴는데 딱히 해야 할 일은 없고, 밥은 당기지 않는 날. 배는 더더욱 안 고프지만, 여유 넘치는 아침을 그대로 흘려보내긴 뭔가 아쉽다. 트레이닝 바지, 후드티, 야구 모자처럼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주워 입고 일단 집 밖으로 나온다. 그런 날의 목적지는 뻔하다. 이른 새벽부터 환하게 불을 켜고 있는 맥도널드.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 30분까지만 파는 한정 메뉴, 맥모닝을 먹기 위해서다. 평소라면 먹지 못하는 메뉴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가 주로 택하는 메뉴는 토마토 에그 머핀 세트. 폭신한 잉글리시 머핀 사이에 치즈, 달걀 프라이, 생토마토가 들어간 메뉴가 메인이다. 그 외에 커피와 해시 브라운이 곁들여 나온다. 기분을 업시키고 싶을 때는 버터와 시럽이 듬뿍 올라간 핫케이크를 추가하기도 한다. 동종업계와 비교해도 유난히 키오스크의 터치 스크린의 반응 속도가 느린 건 손님들의 건강을 챙겨 주기 위한 맥도날드의 큰 그림일까? 전완근에 쥐가 날 만큼 힘껏 눌러 주문을 마친다. 아침부터 근육 운동하게 해 준 맥도널드가 고맙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음을 알린다. 부지런히 청소하는 아르바이트생 사이를 조심히 지나 자리로 돌아온다.      


일단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해시 브라운부터 먹는다. 머핀을 먼저 먹으면 그사이 해시 브라운이 식어버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학창 시절, 하굣길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사 먹던 해시 브라운은 어른이 되어 새벽에 먹어도 변함없는 맛이다. 한입 베어 물면 살짝 바삭하고 짭짤한 으깬 감자 사이로 흥건하게 기름이 흘러나온다. 다시 커피로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내고 머핀을 쥔다. 종이를 조심히 벗겨 한입 먹으면 제일 먼저 거칠한 잉글리시 머피의 거칠한 껍데기가 입천장에 닿는다. 그리고 고소한 치즈와 달걀, 신선한 토마토가 느껴진다. 한창 혈기 왕성하던 시절, 매일 전투를 치르듯 치열하게 여행했다. 내 인생에는 다시 오지 않을 여행이라고 생각했기에 한 곳이라도 더 구경하려고 하루에 3만 보 넘게 걸으며 여행을 했다. 군인이 총알을 채우듯, ’ 철의 행군‘에 가까운 일정을 위해 뱃속에 밀어 넣었던 허름한 호텔의 조식이 느껴지는 맛이다.       


내 몫의 맥모닝을 우걱우걱 씹으며 멍하니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느 요일, 어느 계절에 가도 풍경은 비슷하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좀비처럼 걷는 사람, 물이 뚝뚝 떨어지는 덜 말린 머리를 하고 출근하는 사람, 대낮처럼 분주하게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고 올리는 배달 기사, 간밤의 흔적을 부지런히 치우는 환경미화원 등등 각자의 방식과 색깔로 아침을 맞고 있다. 그 사이에 까치집 머리를 모자에 숨긴 채 맥모닝을 먹는 내가 있다. 일찍 일어난 자, 그중에서도 아침부터 패스트푸드를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는 자에게만 허락된 메뉴가 바로 맥모닝이다.      


평소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는 편이 아니지만 유독 한 번씩 격하게 당길 때가 있다. 1년에 1~2번이나 될까? 아침 일찍 맥모닝을 먹다 보면 양가감정이 생긴다. 소중한 아침을 이불 위에서 뭉개며 흘려보내지 않고 알차게(?) 보내는 바른생활 인간이 된 것 같은 묘한 뿌듯함.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아침부터 식도에 밀어 넣는 게 합성첨가물과 가공식품으로 점철된 패스트푸드라는 죄책감이 있다. 바른생활과 패스트푸드. 뭔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맥모닝에는 뒤섞여 있다.      


패스트푸드를 먹는 순간은 신나지만, 먹고 나면 몸에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자주 먹는 게 아니니까, 어쩌다 먹는 거니까라고 죄의식을 씻어 보려 합리화를 꾸역꾸역 한다. 이내 누가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 기준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볶아치는 내 특기가 발동했구나 자각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맥모닝 하나를 먹으며 죄책감 따위의 단어를 들먹이는 나도 참 나다 싶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그간 겹겹이 쌓였던 맥모닝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정리된 기분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맥모닝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지금 이 글을 떠올리면 조금 더 따뜻한 눈길로 맥모닝을 바라볼 수 있을 거 같다. 다 먹고 나서도 불건전한 음식을 아침부터 먹었다는 무거운 마음을 지우기 충분하다. 대신, 아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과정에 맥모닝은 목적이 아니라 보조 수단이라는 사실을 또렷히 떠올려야겠다. 맥모닝은 그저 거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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