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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Feb 08. 2023

별다방 단골자리를 빼앗겼을 때 생기는 일

뜻밖의 집중력 저하

여느 때처럼 내가 별다방 **역 지점 문을 열고 들어간 건 분명 새벽 7시. 늘 그렇듯 미처 마무리 못한 영업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직원들만 보였다. 그때 내 사이렌 오더의 주문이 접수됐다는 알람이 울렸다.      


2번째 메뉴로 준비 중입니다. (A-09)     


한발 늦었다. 피케팅이라 불리는 예매 전쟁에서 백전백승의 승률을 자랑하는 황금손은 아니지만, 별다방 **역 지점 사이렌 오더 1등은 일상이었다. 일부러 느긋하게 다음 차를 타고 오지 않는 한 평소 아침 패턴대로라면 사이렌 오더 주문 1등은 흔한 아침 일과다. 그런데 오늘은 나보다 손 빠른 사람이 있었나 보다. 아쉽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넘기려는데 예상 밖의 상황이 나를 막아섰다.      


텀블러를 픽업대의 직원에 건네고 나의 비공식 지정석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내부 계단을 이용해 반 층쯤 올라간 공간의 안쪽 왼쪽 끝자리. 찬바람도 들지 않고, 사람의 왕래도 잦지 않아 조용히 틀어박히기 좋아 내가 사랑하는 곳. 한적하게 내 소중한 아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적지 않은 글을 쓰고, 또 잡다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캄캄한 새벽부터 출근 대장정을 나선 경기도민에게 안정감을 채워주는 4500원짜리 공간, 그곳에 누군가 앉아 있다.      


잠시 당황했다. 사이렌 오더 1등은 빼앗겨도 그 자리를 빼앗긴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빈 좌석은 많지만 내가 앉고 싶은 자리는 없다. 사전에 예약한 것도 아니고, 테이블에 이름을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침을 발라둔 것도 아니니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다. 인정해야 한다. 늘 좌회전하던 위치에서 우회전했다. 내 최애 자리와 같은 라인이지만 맨 오른쪽 끝자리에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앉았다. 몸은 오른쪽 끝자리에 있지만 온 신경은 왼쪽 끝, 즉 내 단골자리로 향해 있었다.  


새벽 첫차도 그렇고, 별다방 첫 타임(?) 손님들도 그렇다. 이름은 몰라도 즐겨 마시는 메뉴가 뭔지 알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새벽 시간을 무엇으로 각자의 시간을 채우는지 안다. 특히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 누구도 그 자리가 내 자리다 공표하지는 않았어도 각자의 자리가 어디인지 안다. 두꺼운 경제 원서를 읽으며 베이글과 차를 마시는 40대 중년 여성은 화장실로 가는 길 마지막 창가 자리에 앉는다. 게임 동영상을 보며 아이스 라테를 마시는 30대 초반 남성은 반 층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 테이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는다. 샐러드를 먹으며 다이어리를 쓴 후 메이크업을 시작하는 20대 후반 여성은 굿즈 섹션 근처 테이블에 앉는다. 다들 덜 깬 잠을 카페인의 힘으로 털어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아침에 몰두하고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정장 차림에 풀 메이크업을 한 30대 후반 여성. 노트북을 켠 채 두툼한 책을 보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고, 흔들림 없이 책에 집중했다. 그란데 사이즈 흰 머그컵에 가득 든 커피가 식는지도 모르고, 책에 홀딱 빠져 있다. 아침에 보기 힘든 무서운 집중력이다. 내가 일어나기 10분 전인 8시 30분. 자리를 정리하고 나갈 때까지 그분은 한 번의 미동도 없었다. 1시간 반가량을 오직 책에만 파고든 집중력이 부러웠다. 난 그사이 첫 타임 동지들이 다 출석했는지 눈으로 자리를 체크하고, 설렁설렁 자기 계발서 한 권을 (읽고 X) 훑고, 쿠폰을 사용하느라 사이즈 업하는 바람에 아침부터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다 마셨다. 덕분에 화장실도 한 번 다녀오고, 옆 테이블에서 넘어오는 회사 욕도 주워 들었다. 내가 그렇게 부산을 떠는 동안 뿌리 깊은 나무처럼 내 단골 자리에 콕 박힌 그분은 책만 읽었다.      


핑계라면 핑계다. 오늘 유난히 집중하기 어려웠던 건 단골 자리를 잃어버린 탓이다. 찬바람, 시야, 소음 등등 불필요한 요소들이 완벽하게 차단되는 단골 자리에 앉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서툰 목수는 연장 탓을 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분위기 탓을 한다. 집중력 딸리는 나는 안정감을 주는 그 자리에 앉지 못한 탓에 오늘 정신이 흐트러졌다. 온도와 각도, 조명의 밝기까지 집중하기 딱 좋은 그 자리의 맛을 그분은 알았을까? 당신이 어쩌다 앉은 그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안방급으로 몸과 마음의 평안을 주는 곳이라는 사실을. 부디 그 자리의 참맛을 모르길 빈다. 영원히 모르길 빈다. 알 때는 알더라도 별다방 **역 지점 첫 타임만큼은 피해 주길 간곡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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