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시즈오카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 시끄러운 자전거 벨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분이 계셨다. 방금 전까지 나에게 카니크림고로케를 만들어 주신 할아버지!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의아한 눈빛을 보내니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신다.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바로 나의 이어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지난 일들을 되짚어 봤다.
밥 먹느라 주머니에 이어폰을 넣어 뒀었는데,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 속 지갑을 꺼내다가 흘러나온 모양이다. 내가 떠난 자리에 놓인 이어폰을 발견하자마자 할아버지는 앞치마만 벗어두고 재빨리 자전거를 타고 가게 근처 골목골목을 뒤지셨을 거다. 나는 보통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쇼핑몰 방향이 아닌 반대편으로 왔으니 시간이 좀 더 걸렸을 테고... 마침 버스를 타기 직전에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셨을 것이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여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영어, 한국어를 전혀 못하시는 할아버지는 미션 수행을 마친 히어로처럼 뿌듯해하는 얼굴로 돌아가셨다. 아마 나는 다음 여행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이폰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두 번 걸음 하지 않고, 혼자 여행의 필수품, 이어폰을 사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폰을 단단히 챙겨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나의 목표는 시즈오카 최고의 전망대, 니혼다이라(日本平). 시즈오카 중심부에 위치한 구릉지대로 후지산이 잘 보이는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일본의 100대 벚꽃 명소랜다)
친절한 할아버지를 만났던 시미즈를 떠나 다시 시즈오카 역으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여행객이 시즈오카 역에서 니혼다이라로 갈 때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일반 시내버스 이용(단점: 배차 간격이 매우 넓다)
2) 니혼다이라 호텔 셔틀버스(단점: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 가능하지만
니혼다이라 로프웨이까지는 셔틀에서 하차 후 좀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시간을 보니 셔틀 시간이 좀 남아 있기도 했고, 무제한 교통패스가 있었으므로 고민하지 않고 정류장에 바로 온 시내버스를 탔다. 그런데 니혼다이라까지 절반 정도 왔을 즈음, 버스가 한 대학교까지 가고 멈춘다. 얼굴에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니혼다이라로 가느냐 기사님께 물었더니, 이 버스는 종점이 이 학교 앞까지만 이라고 했다.
버스 번호만 보고 냉큼 올라탄 내가 잘못했네~ 운이 좋아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탔는 줄 알았더니 최종 목적지까지는 온 만큼 더 가야 한다. 버스가 올 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 운이 꽤나 좋구나 생각했다. 삼십 하고도 몇 년을 더 살아왔으면서도 잠시 간과했다. 나란 인간이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운은 운이고 여행은 여행이다. 그 누구를 원망할 수도, 한탄할 수도 없는 상황!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가느냐? or 마느냐?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 설 수 없으니 닥치고 Go!
그런데 구불구불 산길을 걸어 올라갈 수가 없다. 걸어 올라가는 속도로는 니혼다이라를 보기도 전에 해가 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보도 듣지도 못한 낯선 대학교 앞에 불시착했다. 산 중턱에 있는 대학교는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황량한 바람만 불었다. 시간표를 보니 꼬박 1시간은 바람막이 하나 없는 산속에서 떨어야 한다. 아~ 나는 이곳에서 홀로 외로이 시즈오카의 겨울 산바람과 싸워야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