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시즈오카
혼자 여행이 좋은 이유는 40만 8천 가지 정도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뭐든 실패해도 괜찮다는 게 있다. 그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필요 없고, 에이 별로네~ 하고 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된다. 그렇게 부담감 없는 마음이 의외의 기쁨을 안겨준다.
전날 밤, 잠들기 전 뒹굴거리다 보게 된 한 블로그에서 처음 식당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とん通> 평소 소위 파워 블로거 혹은 블로그 맛집이란 단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애초의 의미에서 많이 퇴색된 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식당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① 한국어 메뉴판이 없다는 점, ② 관광지가 아닌 현지인이 사는 거주지 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③ 구글 지도에도 전혀 정보가 없다는 점! 이 세 가지 이유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위에 나열한 ①~③까지 이유를 조합해 보면 그곳은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은 아니다. 관광객 입맛에 맞게 특색 없이 조리한 요리가 아닌, 동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르는 작고 소박한 밥집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그 가게를 소개한 블로그 주인장도 초밥 먹으러 번화가로 가는 길에 우연히 지나가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찜해두었다가 후에 무작정 들어간 곳이라고 했다.
시미즈 에스펄스 플라자에서 방황하다가 식당 오픈 시간에 맞춰 빼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깔끔한 흰 피케 셔츠에 짧게 자른 백발, 약간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와 오종종한 발걸음의 전형적인 일본 할머니가 맞아주신다.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손때 묻은 오래된 식기와 테이블이 식당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11시 땡 하고 들어갔는데 이미 앞에 손님이 한 팀 있다. 말소리를 들으니 중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대화한다. 뭐지?
(나중에 할아버지께 들으니 저들이 타이완 사람이 있다고 했다. 현지인이 데리고 온 듯싶다)
할머니는 오차를 내주시면서 메뉴판을 건네시는데 나는 사양했다. “난 한국인이라 일본어를 못합니다.”라고 말하고 마법의 단어들로 주문을 했다. “오스스메 오네가이시마스(인기 메뉴 추천 부탁드려요)! 낯선 곳에서 처음 식사를 할 때, 이것만큼 좋은 주문법은 없다. 나의 망상이긴 하지만, 전혀 그 식당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손님이 왔을 때 셰프를 믿고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면 셰프는 가장 자신 있는 메뉴,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메뉴 즉 가장 실패 확률이 낮은 음식을 내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할머니는 뭐라 뭐라 말씀하셨는데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아마 메뉴 이름을 말씀하신 듯한데 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내부를 탐색하며 잠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내 앞에는 한상이 차려졌다. 산더미 같은 양배추 샐러드, 윤기 자르르 흐르는 쌀밥! 그리고 5알의 고로케가 담긴 한상.
이리저리 살펴보고 신중하게 사진을 찍으니 할아버지의 살짝 긴장감이 담긴 시선이 느껴진다. 할아버지께 살짝 미소를 보내주고 된장국으로 입을 적시고 고로케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오! 아니 이것은~~~! 카니크림고로케!! 크림과 게살& 내장과 크림이 찐득하게 어우러진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한국에서 먹던 카니크림고로케 한 20개 정도를 한 개에 응축해 놓은 맛이다. 맛을 음미하는 동안 절로 웃음이 나왔고 나를 보는 할아버지께 양손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오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엔 옅은 미소가 퍼졌다.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돈가스 가게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 와서 손님이랍시고 앉아 있는데 나의 손맛을 제대로 보여줄 테다! 자 맛을 보아라! 정도는 아니겠지만 정성을 가득 담아 준비한 카니크림고로케 한 접시는 한 입 한 입이 사라질 때마다 아쉬울 정도로 진하고 깊은 맛이 느껴졌다.
기분 좋게, 배부르게 인생 고로케는 내 뱃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 분께 진심을 담아 "맛있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가게를 빠져나왔다. 기분 좋은 포만감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따릉 따릉 자전거 벨소리가 들린다. 뭐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그 할아버지다. 고로케를 만들던 백발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대체 왜 나를 따라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