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21. 2023

신나고 싶지만 주목받고 싶지 않아

내향성 관종이 남의 시선에 대처하는 법

요가 수업 시작 10분 전, 자리를 잡고 몸을 푸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목을 시작으로 팔을 지나 몸통 비틀기를 할 때쯤이었다. 데스크 담당 선생님이 뚜벅뚜벅 들어와 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게 거울로 보였다. 평소처럼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려고 오시는구나 싶어, 관심을 끄고 다시 몸풀기에 집중했다. 닫힌 폴더폰처럼 앉은 자세로 허리를 굽혀 이마가 정강이에 닿도록 몸을 납작하게 만드는 ’파스치모타나 아사나’를 할 때였다. 어느새 바짝 다가와 앉은 데스크 담당 선생님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회원님, 혹시 오늘 수련하시는 모습 영상 찍어도 되나요?

회원님만 괜찮으시다면 요가 센터 SNS에 올리려고요.     


깜짝 놀라 스프링처럼 상체가 튀어 올랐다. 전에도 사진은 몇 번 찍었지만, 영상은 처음이었다. 워밍업 하느라 피가 쏠린 얼굴은 달아올랐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SNS에 박제라니... 잠시 고민하다 ‘찍어 주신다면 감사하지만, 얼굴은 안 나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파워가 필요한 아쉬탕가나, 근력 운동 위주인 필라테스였다면 정중히 거절했을 거다. 내가 좋아하는 하타 요가였으니 약간 자신이 있었다. 데스크 담당 선생님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거치대를 챙겨 와 휴대전화를 세팅하고 카메라 렌즈가 나를 향하도록 조정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오늘 수업을 할 요가 선생님은 장난치듯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오늘 회원님이 어려워하는 중심 잡기 할 건데?  

   

못하면 뭐 편집해 주시겠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인배처럼 웃으며 답했지만, 내 앞에 닥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평소와 똑같은 매트 위에서, 똑같은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늘 해오던 동작을 이어가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달라진 거라고는 내 곁의 카메라 렌즈가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뿐. 그 작은 ‘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몸이 굳고,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감시자의 눈도 아니고, 평가자의 눈도 아닌데 그저 뭔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몸과 마음이 굳었다.   

  

내가 이렇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도 누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뚝딱이가 된다. 쉽게 말해 내향성 관종, 신나고 싶지만 주목받고 싶지 않다. 관심은 받고 싶지만, 앞에 나서는 건 싫다. 나를 향한 눈알이 손가락 개수보다 많아지면 머리가 굳고, 표정이 얼고, 동작이 삐걱거린다. 그래서 뒷자리, 그늘진 곳, 사이드가 편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본의 아니게 시선이 모이는 곳에 서게 된다. 여전히 시선 받는 일은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언제쯤 이런 일에 의연해질까? 담담히 넘기는 날이 오긴 할까?


처음 얼마간은 나를 주시하고 있는 카메라 렌즈가 신경 쓰여서 선생님의 구령 없이도 알아서 하던 순서도, 평소 잘하던 동작도 엉겨서 허둥대기 바빴다. 아무리 편집이 있다고 해도 이번 영상은 업로드하기는 무리겠다 싶어 곱게 마음을 접고 동작에 집중했다. 카메라가 찍건 말건 내가 당장 해야 할 순서대로 동작을 하나씩 이어갔다. 수업 후반부에는 카메라가 찍고 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카메라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수업이 끝나고, 땀에 절어 선생님들께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데스크 담당 선생님이 말을 덧붙였다.   

  

회원님 오늘 찍은 영상 카톡으로 보내드렸어요. 확인해 보세요.

     

역시 손이 빠른 선생님이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가며 영상을 확인했다. 내가 요청한 대로 얼굴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내가 잘하는(해 보이는) 부분만 편집된 영상이었다. 역시 편집의 힘은 놀라웠다. 오늘 수업의 절반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동작을 했는데, 그런 티는 나지 않았다. 편집의 효과가 60%, 포기하고 카메라 의식하지 않기가 40% 정도 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나를 안 좋게 볼 사람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안 좋게 보고,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은 내가 미운 짓을 해도 그저 어쩌다 한 실수라고 본다.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쑥스럽고, 어색하더라도 일단 한다. 내향인인 난 남의 시선과 평가에 완벽히 초연할 순 없을 거다. 하지만 덜 의식할 순 있다. 나를 향한 시선의 온도를 높이는 일은 어렵다. 반면 내 머릿속 생각의 시선을 남이 아닌 나를 향하도록 방향을 조금 트는 일은 비교적 쉽다. 신나는 일을 할 때의 기쁨이 커지면 누군가의 시선도, 평가도, 비난도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뭐든 해야, 얻는 게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바나나의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