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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l 31. 2023

딸이 쓴 책 읽고 엄마 계속 울었어

난생처음(?) 주인공이 된 엄마의 소감

온라인 일기장, 브런치 스토리에 나름 몰래(?) 쓰던 이야기가 예상치도 못하게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그 말은 즉 일기처럼 쓴 글이 책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전 두 권의 책에도 가족 이야기가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책은 처음이었다. 인터넷을 하지 않는 노령의 부모님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쓰던 글이 모여 책이 됐다. 오롯이 내 생각, 내 감정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이 책에 담겼다. 실물 책이 나왔고, 저자 증정본을 부모님께 드리며 말했다.      


이 책 주인공은 엄마, 아빠야. 그러니까 꼭 읽어.     


물론 부모님은 지난 책들도 훑어보셨다. 하지만 일흔 고개를 넘어 여든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흐릿한 부모님의 노안으로 좁쌀만 한 글씨의 책을 집중해서 읽기 어려울 거란 걸 안다. 그래서 이번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큰 기대 없이 책을 드리면서 솔직히 두려웠다.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을 테고, 확대 해석 한 부분도 있고, 의도와 다르게 전달된 메시지도 있을 테니까. 혹여 왜 이렇게 썼냐, 이건 틀렸다며 질책이 날아들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며칠을 보냈다.   

  

방에서 주방으로, 화장실로, 다시 외출했다 돌아오는 동안 매번 같은 모습을 봤다. 내 시계만 계속 돌아가고 엄마의 시계는 멈춘 것처럼, 계속 한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거실에서 동그랗게 말린 등을 하고 흐린 눈을 비벼가며 집중해 책을 읽는 엄마. 평소라면 드라마 재방송이나 트로트 방송의 노랫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울 시간, 조용히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집에서 딸이 쓴 책을 읽는 엄마라니. 요즘 말로 엄마는 북캉스를 즐기고 있었다. 채 3일도 지나지 않아 책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벌써 거의 다 읽었네.

역시 본인이 주인공되니까 읽는 속도가 다르네.

그럼 내가 주인공인데 궁금하잖아. 엄마 계속 울었어.

왜? 슬픈 내용 없는데?

자식들한테 못 해 준 것만 생각나서. 아등바등 살려는 젊은 시절 내 모습이 떠올라서.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라는 게 신기해서.


이게 이번 책 주인공의 소감이다. 딸의 시점으로 쓴 본인의 이야기가 엄마께는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정리한 인생의 결과물이 됐다. 스스로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엄마가 태어나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했다. 한국 전쟁 직후에 태어나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엄마. 많이 배우지고, 많이 가지지도 않았고 살림하고, 돈 벌고, 자식 키우고 돈 버느라 뼈가 돌아가고 관절이 닳아 없어진 엄마. 늘 시간과 돈에 쫓기던 엄마가 책의 주인공이 되다니... 늘그막에 책의 주인공이 되어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흐린 눈을 비벼가며 자신이 주인공인 책을 읽으며 북캉스를 즐기는 모습을 엄마도 나도 상상 못 했다. 그게 신기해 책 읽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책을 완독한 후, 엄마는 열혈 영업사원이 됐다. 일가친척은 물론 미용실 원장님, 옷 가게 사장님, 옆집 아줌마까지 아는 사람을 보면 일단 붙잡고 영업에 들어간다. 딸 새 책이 나왔고, 그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며 읽은 소감을 줄줄 읊었다. 아무래도 그냥 책이 아니라 본인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게 되고, 본인들이 아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예비 구매자들의 귀도 그 어느 때보다 쫑긋했다. 노년 영업사원의 활약은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엄마는 자기 대신 책 좀 주문해서 사인해 놓으라고 했다. 수북하게 쌓인 책을 하나하나 꺼내 노란색 첫 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엄마 아빠의 딸
박OO(본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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