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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02. 2023

나의 바보력을 들킬 뻔한 순간

세상은 휴가 중

요가 저녁 첫 타임 수업 시작은 7시 45분. 보통 워밍업을 위해 10분 전에 도착해야 하고,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니까 역으로 계산하면 7시 25분쯤 출발하면 맞다. 일을 마치자마자 저녁도 거르고 부지런히 산책을 다녀온 후 옷을 갈아입었다. 종종걸음으로 요가 센터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처럼 튀어 나가니 굳게 닫힌 문이 나를 막아섰다. 그제야 지난주 금요일 마지막 수업을 마쳤을 때 선생님의 당부가 생각이 났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이라도 꼭 하세요.

그래야 센터 휴가 끝나고 다시 요가 시작할 때 조금이라도 몸이 덜 굳죠.

안 그럼 근육통 생겨서 한동안 고생해요.      


그렇다. 요가센터는 일주일간 여름휴가다. 분명 선생님의 저 당부를 듣고 잊지 말고 간단한 몸풀기라도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한 나였다. 하지만 센터를 나오자마자 까맣게 잊고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자 센터가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지운 듯이 잊고 촐랑촐랑 걸어서 요가하러 왔다. 굳게 닫힌 문 앞의 휴가 공지를 보고서야 무더위를 뚫고 굳이 온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오래 웃을 수도 없었다 까맣게 휴가를 잊고 나처럼 온 사람의 눈에 뜨일까 문워크로 자연스럽게 오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했다. 나의 바보력을 들킬까 두려워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문 앞에 붙은 공지 속 휴가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일하니까 남들도 계속 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늘 열려 있던 가게들의 닫힌 문에 붙은 휴가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보다야 덜하다고 하지만 7월 말에서 8월 초에 휴가를 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사실 업무 메일에는 휴가차 자리를 비운다는 부재중을 알리는 메일도 속속 도착했다. 딱히 휴가 시즌이랄 게 없는 프리랜서의 인생이라 이때가 아니면 휴가를 가지 못하기 때문에 비싼 돈, 사람에 치여가며 극성수기에 휴가를 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뭐가 바쁜지 요즘 정신이 없다. 정확히는 마음이 바쁘다. 생계는 생계대로 돌아가고 하던 일도 마무리하고, 새로운 일도 받아 들었다. 페달을 멈추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계속 밟고 또 밟아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중이다. 무더위는 얼마나 또 지독한지 헉헉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휴가를 가면서 덩달아 내게도 살짝 숨 쉴 구멍이 생길 거다. 가난한 프리랜서의 휴가 제철은 찬 바람 부는 비성수기니 지금은 최대한 돈과 시간을 아껴야 한다. 큰돈 들여 멀리는 못 가더라도 가깝고 시원한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며 잠시의 여유를 만끽하리라는 목표가 무더위에 지친 나를 일으킨다.      


휴가철이 끝나면 사람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살짝 그을린 피부에 은근히 지쳤지만, 생기를 채운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나면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사람들의 그을린 피부가 다시 하얗게 돌아올 때쯤 나는 휴가를 떠날 계획이다. 겨울잠 자는 다람쥐처럼 차곡차곡 모아둔 돈과 시간으로 떠난 휴가지. 그곳에서 평소에 누리지 못하는 여유를 낭비하듯 만끽하며 하루하루를 만끽하는 나를 상상하는 게 요즘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무더위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삼단공격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빡침’으로 무너질 뻔한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말한다.      


“일어나. 돈 벌어야지. 그래야 나중에 휴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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