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지우고 싶었지만 40대에는 채우고 있는 단어
“만약 로또 1등 당첨이 된다면 뭐 할래?”
“만약 10년 전 나에게 딱 3글자만 전달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래?”
“만약 자고 일어났는데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어?”
실현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만약‘으로 시작되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수다를 떤다. 언젠가 누가 물었다.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뭐 할래?” 질문을 받고 골똘히 생각했다. 말하면 이루어지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신중하게 답했다.
“’굳이‘라는 단어를 지울래”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된 후 수많은 처음을 마주하는 시기인 20대. 그 당시 팽배했던 무심한 듯 시크하게 무드에 심취했던 난 모든 새로운 것 앞에서 ’굳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 저세상 갈 날 받아 놓은 사람처럼 심드렁하게 ‘굳이’라는 단어로 벽을 치고 살았다.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시도해야 하나?’
‘불편하고 어색한데 굳이 만나야 하나?’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데 굳이 떠나야 하나?‘
제안이 와도, 기회가 와도, 인연이 와도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얼른 ’굳이‘ 뒤에 숨었다. 실패는 곧 루저라는 낙인을 찍는 거라 믿었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굳이‘ 뭘 하지 않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거다. 실패가 그저 일을 그르치고 엉망이 되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는 걸 한 살 한 살 먹어 가며 알게 됐다. 탄탄대로만 걷는 사람은 없다. 실패로 단련되지 않은 성공은 모래성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결국 실패는 다 경험이 되고, 또 다른 기회를 몰고 온다는 걸 많은 결과들이 말해줬다. 기회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20대에 ’굳이‘를 지웠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굳이
1. 부사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부사 고집을 부려 구태여.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생각해 보면 굳이의 뜻은 두 가지가 있는데 나는 주로 2번, ’고집을 부려 구태여‘라는 뜻만 사용했다. 내게 필요한 건 1번,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였는데 잘못 활용했다. 40대가 된 나는 내 20대에 포도알처럼 촘촘히 박힌 ’굳이’를 후회하고 있다. 다시 20년이 흘러 60대에 할머니가 되어 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은 굳이 뭐든 한다. 밥 먹으면 소화시키겠다고 굳이 1시간 반 산책을 한다. 집 근처 도서관에 빌릴 책이 없으면 굳이 상호대차까지 해서 찾아 읽는다. 굳이 꾸준히 글을 쓰고, 그 글들을 모아 굳이 책을 낸다. 결국엔 내려갈 산을 굳이 올라가고, 무반응으로 돌아올 걸 알면서도 굳이 똑똑 두드리기도 한다. 귀찮음에 져서 주저앉고 싶다가도 ’굳이’가 가져올 선물들이 궁금해 냉큼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1번,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뜻의 굳이로 채운 나의 내일은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