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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09. 2024

아빠와 나의 간짜장 로드

7천 원으로 효도하는 법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새로 오픈한 무한 리필 돼지갈빗집 옆을 지나는 중이었다. 대로변 통창으로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아직 본격적인 점심 피크가 아니어서인지 반 정도는 자리가 찼고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시선을 원래 자리로 거두려다 한 테이블에 눈길이 멈췄다. 40대 후반의 아빠와 중학생 정도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돼지갈비는 아빠가 열심히 굽고 있고, 아들은 고기에도 아빠에게도 눈길은 두지 않고 오직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었다. 시큰둥한 자식 눈치를 보며 잘 익은 고기를 권하는 아빠의 재촉에도 아들은 미동도 없이 핸드폰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부자간의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 아들은 지독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는 아이 보다 부모님의 나이에 더 가까워서일까? 내 새끼였다면 분명 꿀밤을 놓고 싶은 상황일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냉큼 거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꿀밤 놓을 자격이 있다 해도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생각해 보면 사춘기 시절 나는 만사가 시큰둥한 아이였다. 부모님과 대화는커녕 눈 마주치는 것도 귀찮아했고, 방 안에 틀어박혀 티브이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뒹굴뒹굴하는 게 전부였다. 사고를 친 것도,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예 방문을 닫고 부모님의 관심을 끊어 내는 게 일상이었다. 그 시절의 과오가 떠올라 집에 돌아오자마자 속죄의 마음으로 아빠에게 외식 데이트를 신청했다. 보고 또 본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아빠는 냉큼 옷을 챙겨 입고 나를 따라나섰다.    

  

그날의 메뉴는 이미 마음속에 정해 두고 있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두 분의 취향을 절충한 메뉴여야겠지만 엄마는 친목회 분들과 떠난 꽃놀이 여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중국 음식이다. 갈비탕, 뼈해장국의 계절을 지나 요즘 아빠의 최애는 간짜장이다. 미리 만들어둔 묽은 짜장을 얹어 주는 일반 짜장면과 달리 주문 즉시 볶아야 하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 주방의 화력, 주방장의 실력 모든 게 균형을 이뤄야 최상의 맛을 내는 간짜장. 평생 짜장면을 먹어 온 아빠는 간짜장 맛으로 그 중국집의 수준을 판단한다.      


검색 신공으로 집 주변의 간짜장 노포를 찾아다니는 순례 중이다. 이날의 목적지는 옆 옆 동네의 오래된 중국집. 오히려 좋다. 그 정도 걸으면 짜장면을 맛있게 먹을 만큼 배가 꺼질 거리니까. 배달 앱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고, 근처 동네 사람들만 알음알음 가는 곳이었다. 초행길이니 지도 앱의 안내에 따라 벚꽃길을 걷다 보니 오래된 아파트 단지 상가에 도착했다. 당장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낡고 허름한 상가 2층 끝, 조명도 없는 컴컴한 복도 끄트머리에 예스러운 붉은색 폰트로 쓴 <자금성>이란 간판이 보였다. 흔하디 흔한 그 이름을 발견한 순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된 기분으로 낡고 허름한 가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촌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앞에 펼쳐졌다. 유행이 한물간 포인트 벽지가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우드 시트지로 덮인 테이블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이번 도전은 망한 건 가 싶었다. 일단 왔으니 간짜장 하나, 볶음밥 하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허리 아프다는 아빠를 꼬셔 먼 곳까지 왔는데 실망시키면 어쩌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올 찰나,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쳤다. 장년 층 단체 손님, 혼자 온 아저씨, 알바를 끝내고 온 대학생 무리, 출입증을 목에 건 채 점심을 먹으러 온 근처 직장인 두 명까지 합세하니 금세 홀이 가득 찼다.      


우리가 주문할 때, 주문받던 여자 사장님이 “좀 기다리셔야 해요.”라고 해서 왜 우리 밖에 없는데 오래 기다리지? 의아했는데 그제야 이해가 갔다. 보조도 없이 남자 사장님 혼자 요리하고 있었다. 주문 즉시 조리를 시작하게 때문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렸다. 주방과 홀을 잇는 배식구 사이로 짜장 볶는 냄새가 넘어올수록 우리의 뱃속은 요동쳤다.       


오늘의 목적 음식, 간짜장을 받아 드는 순간 코 끝에 불향이 훅 닿았다. 인공적인 불향이 아닌 진짜 불이 훑고 간 향이었다. 맛에 대한 기대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큼직한 양파와 고기가 군데군데 들어간 찐한 간짜장 소스를 면 위에 붓고 비비니 젓가락 끝에 탄력이 느껴졌다. 개인 접시에 내 몫을 덜고, 아빠께 그릇째 넘겼다. 내가 간짜장을 비비는 동안 볶음밥과 딸려 나온 짬뽕 국물을 맛본 아빠는 눈이 똥그래졌다. 잔뜩 설렌 아빠의 젓가락이 간짜장으로 직진했고, 한 젓갈 크게 떠서 간짜장을 입에 넣은 아빠가 말했다.     

 

잘하네 이 집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인 아빠가 이 정도 말한다는 건 꽤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악플만큼 아픈 무플이라고나 할까? 바로 전에 갔던 간짜장 집은 먹을 때도, 먹고 나서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내 입에도 단맛이 과하다 생각했는데 예민한 아빠 입에는 불합격이 틀림없었다. 반면 이곳의 간짜장을 즐겨 먹지 않는 내 입에도 단맛보다는 춘장 본연의 맛이 잘 살아 있다는 게 느껴졌다. 또 채소 하나하나가 숨 죽은 게 없이 불 맛이 잘 코팅되어 있었다. 기름기가 많지도 않았고, 면발도 어설프게 익혔거나 불지 않게 적당한 탄력이 살아 있었다. 별 얘기도 없이 간짜장을 흡입하는 아빠에게 냅킨을 건네며 혼자 내심 뿌듯했다. ‘이번 간짜장 로드는 성공이군.’ 단돈 7천 원에 아빠와 추억을 하나 더 쌓았다. 나중에 아빠의 거동이 불편해지면 웃으며 떠올릴 추억의 맛이 적립됐다.      


기분 좋게 간짜장 값 계산 후 잡동사니와 먼지가 쌓인 오래된 아파트 상가를 걸어 내려오며 아빠를 졸랐다. 간짜장이 휩쓸고 간 텁텁한 입을 헹굴 커피를 사달라고 떼를 썼다. 이제 커피가 당기지 않아 마시기 싫다는 아빠는 네 것만 사라며 돈을 건넸다. 일부러 더 철없이 팔랑팔랑 돈을 들고 걸어 근처 저가 커피전문점으로 향했다. 천오백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쪽쪽 빨면서 아빠와 나란히 벚꽃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아빠와 딸의 간짜장 로드,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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