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순간
요가 수업을 마치고 땀에 찌든 채 매트를 정리하던 내게 선생님이 물었다.
회원님, 요즘 컨디션 어때요?
뭐... 괜찮아요.
동작은 잘 되고요?
늘 그렇죠. 밸런스 잘하고 싶은데
마음만큼 되지 않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죠!
다른 거는요?
다른 거? 뭐 그럭저럭...
제가 보기에 회원님은
밸런스는 괜찮은데 오히려 전굴이...
4년 넘게 다니고 있는 요가 센터에 얼마 전 새로 온 선생님. 그의 눈에는 내 전굴이 문제점으로 보였나 보다. 전굴, 상체를 앞으로 숙여 몸통이 허벅지에 닿도록 몸을 폴더처럼 접는 동작이다. 서서 할 수도 있고, 앉아서 할 수도 있다. 선생님은 요가 기본 동작 중 하나인 내 전굴 자세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좀 더 엉덩이를 뒤로 빼고, 깊숙이 숙이며 등을 평평하게 펴는데 신경을 쓰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근육 자체가 거의 없고, 잘 늘지도 않고, 코어도 약한 편이다. 그래서 상체를 꼬거나 비틀며 팔이나 한 다리로 균형을 잡는 밸런스 동작이 힘들다. 게다가 나이 먹을수록 균형 감각이 사라지니 비슷한 체형의 젊은 회원들보다 밸런스가 빠르게 무너졌다. 대신 타고난 유연성이 좋아 구기고 찢고, 늘리는 자세를 잘한다고 자부했다. 선생님의 ‘회원님의 문제는 전굴’이란 말은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전굴은 나빴고,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던 밸런스는 괜찮았다. 내가 보는 내 문제와 남이 보는 내 문제 사이의 간극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별 것 아니라고 느끼는 걸 누군가는 큰 문제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내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또 다른 누군가는 별 것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혼란스럽다. 요가 자세처럼 선생님 즉 전문가의 의견이라면 적극 수용하지만 취향이나 관점의 차이일 때는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문제점 지적은 나를 자세히 관찰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게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문제점조차 찾을 수 없다. 지적도 관심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만 이 모든 게 다 나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해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면 받아들이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아니라고 느끼면 그 사람의 의견이라고 존중해 주면 된다. 문제점을 말하는 게 자유인 것처럼 수용하는 것도 당사자의 자유니까.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전굴 할 때면 평소보다 더 자세에 신경 쓴다. 엉덩이 살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뒷벽 쪽으로 밀고 또 민다. 쉽게 내려가려고 둥그렇게 말려드는 등을 최대한 납작하게 만들며 서서히 허벅지 방향으로 낮춘다. 평생 굽신거리며 사느라 새우처럼 굽어 버린 등을 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굽은 등을 펴는 다리미가 등에 올라가 있다고 상상하면서 느긋하게 숙인다. 코어에 힘을 딱 주고 수련을 반복하면 전굴은 좋아지고 덩달아 코어가 받쳐줘야 자세가 완성되는 밸런스도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