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변잡기

내 인생이 버벅거렸던 이유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신호

by 호사


사용하던 앱을 업데이트하라는 알림 창이 떴다. 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귀찮게 업데이트를 또 하라고? 같은 귀차니스트의 심기를 건드리는 안내였다. 하지만 업데이트 말고 다른 해결책을 모르는 IT 무식자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버그를 찾아내고 개선책을 만들었을 개발자들의 노고를 떠올렸다. 구시렁거리던 입을 조용히 닫고 공손하게 업데이트 요청 버튼을 눌렀다. 하는 김에 다른 앱들도 업데이트하러 앱스토어에 들어갔다.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앱들이 줄을 서 있었다. 버전 기록을 보다가 가슴에 훅 박히는 문구를 봤다.


필요 없는 복잡함을 줄이고,
단순하게 다듬었어요

버그 수정, 서비스 안정화, 사용성 개선 등 흔히 봐왔던 문장과 담고 있는 내용은 같지만, 온도가 다른 문장이 쓰여 있었다. 사용자 친화적인 표현을 고민했을 담당자의 시간이 느껴졌다. 작은 거에 쉽게 감동하는 문과형 인간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다정한 멘트였다. 무뚝뚝하고 차디찬 IT 세상에 이런 문장을 고심했을 UX 라이터 덕분에 업데이트라는 단어를 다시 돌아봤다.


요즘 내 인생의 화두는 업데이트다. 순간순간 삶이 버벅거리고, 과부하에 걸렸다.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났고, 행복 저장 공간이 부족했다. 이 단계에서 벗어나 다음 상위 단계에 도달해야 하는 시기가 된 거다. 그래서 인생의 업데이트란 뭘까? 업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을 수없이 나 자신에게 해댔다. 뻔한 일상, 고만고만한 하루, 이렇게 살다 가는 별반 다를 거 같지 않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걱정에 생각이 많았다. 업데이트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뱅글뱅글 돌리며 어떻게 살아야 내 인생이 업데이트될지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IT 현자의 말대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업데이트 안내문이 말하는 대로라면 삶의 필요 없는 복잡함은 줄이고, 단순하게 다듬으면 된다. 지금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뭘까? 돌이켜봤다. #생각, #걱정, #고민! 이 3대장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자, 그럼 다음 단계는 ‘단순하게 다듬기‘다. 삶이 단순해지면 생각도 단순해진다고 했던가? 뭘 어떻게 할지 몰라 일단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헛헛함이 차오르던 텅 빈 만남을 하나 둘 정리했다. 인정받기 위해 애쓰던 관계를 끝냈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을 끊었다. 생기지도 않은 일을 상상의 나래 위에서 저글링 했던 습관을 버렸다.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끌어안고 고민하는 짓을 그만뒀다.

그렇게 버리고, 끊고, 그만두고 나니 일상은 놀라울 만큼 단순해졌다. 카페인이나 알코올에 기대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일을 한다. 무리하지 않을 만큼 일을 하고, 적당히 번다.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쓴다. 운동하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간다. 산에 가고, 전시회에 가고, 도서관에 간다. 함께일 때도 있지만 혼자일 때도 많다. 물건을 사서 쌓아두는 대신 경험으로 내 시간을 채운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쉬고 싶은 만큼 쉰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다 보니 과거의 내가 필요 없는 복잡한 것들을 붙들고 사느라 아등바등했는지 보였다.


필요 없는 복잡함을 줄이고, 단순하게 산다. 흘려들을 건 흘려듣고, 떠나보낼 건 떠나보낸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고 애쓰기보다 나를 채우는 것들을 찾았다. 내 취향의 것들로 채워 단순하게 사는 건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과 행복감을 안겨줬다. 남들의 기대, 기준으로 사는 것도 해봤으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필요 없는 복잡함을 줄이고, 단순하게 산다.


요즘도 가끔 업데이트 알림이 뜬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다며 다음으로 미뤘을 버튼을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누른다. 업데이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됐으니까. 거창한 결심 없이, 매일 조금씩 필요 없는 걸 지우는 일을 수행한다. 완전히 새로워지진 않았지만, 더 이상 버벅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번 업데이트는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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