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싫어 인간’이 요가를 하면 생기는 일
대체 요가란 뭘까. 요가 수업이 끝나면 한꺼번에 회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데스크 실장님은 늘 그렇듯 한 명의 회원도 놓치지 않는다. 꾸준히 수련하는 회원에게는 출석을 잘해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따뜻한 칭찬을 던진다. 요가 수업 첫날인 신입에게는 내일은 근육통 올 테니 집에 가면 꼭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주무시라고 다정한 꿀팁을 건넨다. 어깨가 결려 병원에 다닌다던 회원에게 어깨는 좀 나아졌냐고 세심하게 안부를 묻는다. 최고령 회원에게는 수업하는 사이 진눈깨비가 내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히 가라는 마무리 인사로 배웅한다. 어느 하나 복사한 멘트가 없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회원별 맞춤 대응이다. 일을 사랑하는 프로일까? 타고나기를 천성이 따뜻한 사람일까? 궁금했다.
수업의 열기가 다 사라지지 않은 시뻘게진 얼굴로 점퍼 지퍼를 채우다 말고 물었다.
“실장님은 어쩜 그렇게 다정해요? 그런 다정함은 대체 어디서 배우는 거예요? 진짜 돈 주고라도 배우고 싶을 정도예요.”
실장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이건 원장님밖에 모르시는 건데... 사실 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인간 싫어 인간’이었어요. 다들 그런 것처럼 회사 다닐 때는 일, 인간관계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어요. 다 싫어져서 퇴사 지르고 방황하다가 우연히 여기서 일 시작하게 됐어요. 일하면서 중간중간 요가 수련도 하고, 매일 요가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같이 몸과 마음이 풀어졌어요. 신기하죠?”
사람만 보면 꼬리 콥터(꼬리+헬리콥터) 작동하며 사람 쫓아다니는 리트리버 같은 성향의 실장님만 봐서일까? 그간의 사정을 들으며 암흑기 시절 실장님 모습을 상상해 봤지만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이토록 해맑은 사람을 ‘인간 싫어 인간‘으로 만든 빌런들은 대체 어떤 인간들일까? 궁금해졌다. 실장님이 생략한 행간의 사정까지 다 알 순 없지만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사람이 빛나는 자리는 원래 정해진 게 아니라 자기가 살아남은 자리라는 사실. 내가 어디서 환하게 웃을지는 남이 아니라 내가 정한다.
나도 그랬다. 6년 전, 처음 요가를 시작할 때 뭐든 마음대로 풀리지 않던 시기였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간 싫어 인간‘이었다. 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만든 어깨 통증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요가센터 문을 두드렸다. 병원과 한의원 뺑뺑이를 해도 별 차도가 없어 찾은 차선책이었다. 일주일에 3~5번 꾸준히 수련하면서 서서히 어깨 통증은 사라졌다. 신기하게 인간과 세상을 향한 미움도 천천히 옅어졌다.
요가 수업에서 듣는 말은 속세의 말과 정반대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세요.‘,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그러췌~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등등 #빨리빨리, #과정보다는 결과, #비판을 가장한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던 사람에게는 신세계였다. 느긋하고 따뜻한 응원의 말을 들으며 꾸준히 수련하다 보니 바닥난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채워졌다. 그게 신기해 작은 요가 매트 안에서 몸을 늘이고, 조이고, 꼬고, 굽히고, 접으면서 넘쳐나는 불필요한 생각을 지웠다. 생기지도 않은 일에 전전긍긍하는 대신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그런 날들이 쌓이자 돌덩이 같던 딱딱한 어깨, 쇳덩이를 얹은 것 같은 무거운 마음도 점점 풀어졌다.
몸이 먼저 느슨해지면 마음도 따라온다. 부지런한 파도처럼 매일 불안과 돌발 상황이 밀려들지만 요가 수업에서 들었던 ’어떤 고통이든 다 지나갑니다.’라는 말을 조용히 읊조리며 의연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산다. 수련이 부족해서 아직 실장님만큼 드라마틱하게 ‘인간 좋아 인간‘이 되진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싫은 인간을 머릿속에 박제해서 ’셀프 지옥‘ 만드는 짓을 하진 않는다. 대신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흘려보낸다.
요가는 자세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덜 미워지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내 몸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기 힘든데 타인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걸 관절 마디 마디로 깨닫는 시간이다. ’인간 싫어증‘ 완치의 길은 아직 멀다. 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머리를 들이미는 내 인생의 빌런들을 향해 화내고 욕하는 대신 내면에 생채기를 남기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말랑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