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아니라 구조로 버틴 시간들
아직도 계속 요가를 다녀?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달려?
요즘도 산에 다닌다고?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날 때면 빠지지 않고 듣는 말이다. 오는 5월이 되면 만으로 요가는 5년, 등산은 4년, 러닝은 1년이 된다. (의도한 건 아닌데 모두 5월 전후로 뭔가를 계속 시작했다.) 뭘 하나 진득하게 못 하는 사람이었다. 꾸준히 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게 더 많았다. 기회만 되면 튀어 나갔고, 눈치 봐서 적당한 타이밍에 손을 놨다. 변덕은 심했고, 취향은 수없이 바뀌었다. 반짝이는 새로운 것들은 매일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런 내게 #꾸준히, #계속이라는 단어가 붙는 날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20~30대의 나는 겁보 주제에 충동적으로 정하는 게 많았다. 분위기에 휩쓸려 대책 없이 일을 그만두기도 하고, 폐부를 찌르는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에 마음의 문을 닫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리턴 티켓도 없이 훅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모든 결과를 미래의 나에게 맡기곤 했다. 아직 젊으니까, 기회는 또 오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나이를 차고 넘치게 먹었던 어느 날, 문득 내 모습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 점점 기회의 문은 좁아지고, 설자리가 없는 인간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상상하던 미래의 내 모습과 현실 속 내 모습이 한참 거리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끝없는 불안과의 싸움이 시작된 거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은 ’ 낡은이‘가 될까 봐 두려웠다. 닥치는 대로 쓰고, 안 해 보던 것들을 하나, 둘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 요가‘였다. 운동이라고 하면 진절머리를 치던 귀차니스트. 다이어트는 차라리 안 먹고 안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해맑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과격한 운동을 하기는 무리였다. 정적이고, 조용하고, 부딪힘 없는 개인 수련인 요가는 나 같은 내향인에게 딱이었다. 은은한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몸을 구기고 펴다 보면 희한하게 잡생각이 불안이 사라졌다. 요가 센터 문밖만 나가도 카톡 알람, 부재중 전화, [긴급]을 달고 보내온 이메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쨌든 요가 수업을 듣는다는 그럴싸한 핑계로 속세와 잠시 단절할 수 있다는 기쁨 덕분에 요가에 점점 빠져들었다.
물론 루틴을 탄탄하게 만들기까지 고비도 있었다. 24시간 상시 대기처럼 살았던 프리랜서에게 특정 시간에 연락이 힘들다는 건 마이너스 요인에 가깝다. 하지만 나를 채우는 시간을 내가 챙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서서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요가에 빠지면서 수없이 갈까? 말까를 저울질하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3~5번 고정된 시간에 요가한다는 루틴은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 매력에 홀려 N 번째 재수강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간이 흐르면 지루함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그 시점에 손을 놓는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다. 등산도, 러닝도 그런 식이었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 어디 뻥 뚫린 곳에 가면 복잡한 내 머릿속도 말끔해질 거 같았다. 그렇게 주말 오전 눈을 뜨면 산에 가는 루틴이 생겼다. 일이 손쓸 수 없을 만큼 꼬여 불안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 무작정 중랑천에 가서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점점 늘어 일주일에 다섯 번, 10km씩 달리는 일에 내 몸을 밀어 넣으니 불안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불안이 내 일상을 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 불안은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그 악순환을 끊어낸 게 루틴이었다. 불안이 나를 다 갉아먹기 전에 루틴의 플로우에 나를 맡긴다. 침대 위에서 웅크린 채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거대한 무언가를 바꿀 힘은 나약한 인간에게는 없다. 하지만 내 몸뚱이 하나 일으킬 힘은 있다. 일단 몸을 일으켜 요가를 가던, 러닝을 하던, 등산을 가던 하나라도 해낸다.
매일 가기 싫지만 그런 감정이 몸을 지배하기 전에 선수 쳐 버린다. “일단 나가!”이 한마디와 함께 문지방을 넘고 나서 후진한 적은 없다. 루틴을 계속 굴리다 보면 어느새 내 몸은 걱정과 불안에서 멀리 떨어진다.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고민거리도 거리를 점점 두고 보면 작은 점이 된다. 어떻게든 시간은 지나가고 뭐든 과거의 일이 된다. 일단 해내기만 하면 후회가 아니라 성과가 된다. 나약한 의지로 하지 못하는 일을 루틴의 힘을 빌려서 한다.
대학 시절,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가장 놀란 부분은 그의 필력이나 아웃풋이 아니었다. 하루를 3등분으로 나눈 그의 일상 루틴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정해둔 분량의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 또는 수영으로 기초 체력을 다진다. 저녁에는 독서, 음악 감상 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이 루틴을 보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지? 이 정도는 해야 대작가가 되는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난 작가는 못하겠다...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작가로 살고 있고, 크고 작은 부침을 겪고 보니 그가 왜 루틴을 지키며 사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게 기댈 곳은 단단한 루틴뿐이다. 쉽게 잡생각에 잡아먹히는 사람에게 단단한 루틴이 필요한 이유다. 맹수들이 그득한 허허벌판에 혼자 내동댕이쳐졌다고 느낀다면 튼튼한 울타리를 치듯 탄탄한 루틴으로 나를 지킬 필요가 있다.
굳이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쓴 이유는 계속되는 혹한에 매일 나약하기 짝이 없는 결심이 시험받기 때문이다. 뜨거운 팬 위의 인절미처럼 늘어지는 몸과 마음을 루틴으로 일으킨 힘을 되새기며 다독인다. 그래서 오늘도 하기 싫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루틴에 힘을 빌려 억지로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