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접어 넣으면 생기는 일
그날 나는 요가 수업에서 한 사람의 ’인생 업데이트’를 목격했다.
다른 곳에 다녀 본 적이 없어서 타 요가센터 회원들 사이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다. 다니는 요가센터는 회원들끼리 유대가 끈끈하다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몇몇 외향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내향인들인지 살금살금 들어와 조용히 매트를 깔고 각자 수련하는 분위기다. (이게 극내향인인 내가 N번째 재수강을 하는 결정적 이유다.) 오래 다녀도 얼굴만 알고 간단한 눈인사만 할 뿐 적극적으로 무리화하거나 친목을 나누지는 않는다. 그래도 오며 가며 마주치는 오래된 얼굴들 사이, 신입이 들어오면 눈이 갈 수밖에 없다.
2년 전, 오전 수업을 다니던 시절, 가면 늘 왼쪽 맨 뒤에 앉는 신입이 있었다. 일단 짧은 스포츠머리에 평균 여성에 비해 큰 체격에 눈이 갔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 중년 여성은 말수가 많지 않고 표정도 딱딱했다. 타고나기를 유연성과 담을 쌓은 사람처럼 보였다. 허리가 안 좋은지 앞으로 몸을 숙이는 자세는 늘 힘겨워 보였다. 토트넘 로고 반팔 티셔츠에 트레이닝팬츠 차림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업을 빠지는 일은 없었다. 꾸준한데도 실력이 눈에 띄게 느는 것 같진 않았다. 마음만큼 실력이 따라와 주지 않는 거 같아 조용히 마음으로 응원하는 분이었다.
그러다 내가 수업 시간을 저녁으로 옮기며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얼마 전 수업에서 그분을 오랜만에 마주쳤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새로 온 회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토트넘 로고 티셔츠 덕분에 알아봤다. 짧았던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어도 집게손가락 길이 정도 남을 만큼 길었다.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몸은 가벼워졌고, 동작은 부드러워졌고, 무엇보다 얼굴이 밝아졌다. 먹구름 가득하던 얼굴에 생기가 맴돌았고, 활력이 느껴졌다.
못 본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요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전처럼 요가가 고문받듯 괴로운 게 아니라 즐기고 있다고 온몸이 정직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허리를 굽히는 것조차 괴로워하던 사람이 보조 도구 없이도 손으로 발끝을 잡았다. 오른쪽 팔을 굽혀 등 뒤로 넘기고, 왼쪽 팔을 굽혀 옆구리 뒤로 넘겨 뻗어 양손을 잡을 수 있게 됐다. 2년 전, 팔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생기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던 사람이었다. 몸무게가 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동작을 수행할 때 느껴지는 공기의 저항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처음 시작했을 때, 요가는 그저 몸을 늘리고 접는 운동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토트넘 티셔츠, 그분을 보고 알았다. 요가는 어쩌면 매일 조금씩 변하는 나를 자각하는 일이다. 요가는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에 시간을 접어 넣으면 결국 얼굴부터 모든 게 달라진다고 요가는 말하고 있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일어난 그 변화를 목격한 뒤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묻는다. 요즘 관심사가 뭐냐고. 어떤 일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냐고.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가냐고. 운동, 요리, 가드닝, 재테크, 쇼핑, 드라마, 사업, 여행 등등 장르는 각양각색이지만 그걸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생기가 가득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평소 말도 없고, 무뚝뚝하던 사람이 회사 근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재롱 보는 재미에 자꾸만 지갑을 열게 된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다시 보인다. 운동이라고는 평생 숨쉬기 운동 빼고 해 본 적 없다는 사람이 새해부터 5km씩 격일로 달리고 있다고 말할 때 얼굴에 뿌듯함이 뚝뚝 떨어진다. 좋아서 하는 일들에 시간을 쌓는다는 건 결국 그런 의미였다.
무너지고 넘어지던 나의 지난날은 큰 기대는 큰 실망과 1+1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허망한 기대는 품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쫓는 대신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그 안에서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찾아내서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어느 날 갑자기 무릎 아래가 없어진 듯 와르르 무너지는 날이 와도, 그 즐거움들은 ‘좌절 방지턱’이 되어 나를 다시 일으켜 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