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어머니의 칭찬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 이유
시장 촬영의 성패는 카메라도, 대본도 아니다. 오직 상인들의 마음이다. 아무리 구도를 잘 잡아도, 동선을 완벽히 짜도, 상인의 표정이 굳어 있으면 끝이다. 호의적인 분도 있지만, “길 막고 누가 여기서 찍으래?” 하고 호통부터 치는 분도 있다. 사전에 상인회 허가를 받고, 관계 기관 공문까지 갖춰도 소용없다. 시장은 종이 위가 아니라 사람 위에 세워진 공간이니까.
그래서 현장에선 기술보다 태도가 먼저다.
“(손풍기를 가까 대며) 어머니, 시원하시죠?”
“아부지, 이 집이 제일 맛있다고 서울에서 소문 듣고 왔어요.”
맞장구도 치고, 파리도 쫓고, 박스도 함께 옮기고, 주전부리도 함께 나눠 먹는다.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오늘 힘드시죠” 한마디를 건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더라도 그날 찍어야 할 컷은 뽑아야 하니까. 그게 내 일이고, 그게 내 밥벌이다.
정수리를 뚫을 듯 햇볕이 뜨거웠던 6월, 통영의 한 시장 골목 난전에서였다. 생선을 팔던 어머니가 얼음이 동동 뜬 믹스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더운데 이거 마시고 해. 아이고~ 작가 아가씨 같은 살가운 딸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아가씨네 부모님은 얼마나 좋을까?”
생존형 살가움을 기계적으로 내뿜던 나는 그 말이 유난히 또박또박 귀에 박혔다.
어머니는 아들만 둘이라고 했다. 다 키워 놓으니 제 혼자 큰 줄 알고 엄마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웃으며 타박했다. 나는 같이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도 맞췄다. 그런데 머릿속엔 전혀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한때 시장에서 일하던 우리 엄마의 등. 여름이면 땀이 맺히고, 겨울이면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추위에 말려드는 등 말이다.
나는 저 어머니들께 하는 만큼 우리 엄마에게 살가웠던 적이 있었나. 도무지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씁쓸한 현실을 달달한 믹스커피와 함께 꾹 삼키고 말했다.
“에이,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집에 가면 시큰둥한 딸이에요. 다 똑같아요.”
웃으며 넘겼지만, 그 순간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땀으로 등이 홀딱 젖을 만큼 더운 날 촬영을 하는데도 내내 마음 한쪽이 서늘했다. 방금 전까지 능숙하게 굴던 내 태도가 갑자기 얄팍해 보였다.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꺼내 쓰는 말과 표정이 자연스러워서 그게 가증스러워 보였다.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데만 5시간. 좁은 승합차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창밖은 어둑해졌고, 뜨끈한 바닷바람 대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돌았다. 스태프들은 하나둘 잠이 들었는데 나는 좀처럼 눈을 붙이지 못했다. 오늘 하루 쓴 에너지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되감기 됐다.
밖에서의 나는 성실했다. 다정했고, 세심했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읽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면 배터리가 방전된 휴대전화처럼 말수가 줄어들었다. “오늘 어땠어?”라는 질문에 “그냥. 그렇지 뭐. 아 피곤해”라고 답하고 침대에 쓰러지기 바빴다. 부모님의 하루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길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차피 내 편이라는 믿음으로, 가장 쉬운 태도를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무심했다.
시장에서 배운 건 촬영 노하우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방식이었다. 상대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 눈을 맞추는 것, 작은 수고를 대신해 주는 것.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 다만,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노력해야 하는 태도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시장 어머니, 아부지들께 하는 만큼 진짜 엄마, 아빠에게는 그러지 못했을까? 가족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착각. 내가 좀 무심해도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 내 피로가 먼저라는 자기합리화에 젖어 있었다. 타인의 마음은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부모의 마음은 대충 다뤘다. 밖에선 어머니, 아부지 부르며 살갑게 굴면서 집에선 “나 피곤해” 한마디로 대화를 닫았다.
시장 촬영의 성패가 상인의 마음에 달렸다면 내 삶의 성패는 누구의 마음에 달린 걸까? 그날 촬영이 끝난 후부터 좀 달라졌다. 대단한 효도를 하는 건 아니다. 내 부모를 남의 부모 대듯 대하는 중이다. 남에게 쓰던 정성과 다정을 집에서도 끄집어낸다. 간식을 나눠 먹고, 눈을 보고, 하루를 묻는 일. 시장 촬영에서라면 너무도 당연히 하던 일을 집에서도 하기 시작했다. 새로 산 섬초가 얼마나 다디단지, 앞집 아줌마 건강이 어떤지, 어깨가 좀 쑤신다는 얘기까지. 크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얘기를 주고받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덜 쓸렸다.
밖에서 나는 늘 누군가의 마음을 먼저 살핀다. 집에서도 조금은 그렇게 해 보는 중이다. 여전히 피곤한 날이 더 많고, 여전히 말수가 줄어드는 날도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한 단어로 대화를 끊지는 않는다. 촬영은 길어야 며칠이면 끝나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현관문을 열 때 한 번 더 생각한다. 밖에서 쓰던 학습된 사회성, 후천적 살가움을 쉽게 놓지 않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