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지우면 결과가 남는다
마흔 줄에 ‘모델’로 데뷔(?) 했다. 메이크업 자격증을 준비 중인 지인의 요청으로 기꺼이 인간 연습장이 되기로 했다. 미용학원 연습실에 마네킹처럼 앉아 실습 모델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트위기가 됐다가 메릴린 먼로가 됐다. 노인이 됐다가 발레리나가 됐다. 짬짜면 그릇이라도 된 듯 왼쪽에는 한국무용 메이크업, 오른쪽에는 펑크 메이크업을 했다.
변신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각자의 최신 근황부터 자격증 취득 과정, 미용 분야의 미래 등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었다. 조잘조잘 떠들며 메이크업을 받는 도중 문을 벌컥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자기 몸집만 한 커다란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린 후 각종 미용 도구를 꺼내 세팅했다. 마침, 복도를 지나던 담당 선생님이 들어와 그 학생에게 인사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수다 볼륨은 줄었고, 원치 않아도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미용 계열 대학 추가 합격을 기다리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얼마 전 본 네일아트 자격증 시험 결과를 물었다. 직전까지 발랄했던 학생 목소리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험 당일, 모델이 펑크를 냈다고 했다. 운이 나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학생은 그전 시험을 몇 차례 낙방하고 다시 심기일전한 재도전이었다. 안타까움에 선생님과 함께 이전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를 하나씩 짚었다. 모델 큐티클 제거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소독에 소홀해서, 베이스 코트 바르는 걸 깜빡해서 계속 떨어졌다. 네일 분야뿐만 아니었다. 학원에 다닌 지 1년 가까이 되는데 메이크업도, 헤어도 시험은 꾸준히 봤지만 아직 손에 쥔 자격증은 없었다. 선생님은 연습만이 살길이라며 풀 죽은 학생을 응원했다. 하지만 학생은 ‘자신은 유독 운이 나빴다‘고 앵무새처럼 말했다. 그 말로 시험에 임하는 학생의 자세가 어렴풋이 보였다.
제삼자가 듣기에 선생님은 미래를 향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학생은 계속 과거의 결과에 갇혀 있었다. 학생 쪽보다는 선생님 쪽 나이와 가까워서일까? 선생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인내심 많은 선생님께 존경심이 들었다. 감정은 절제하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선생님의 프로페셔널함에 감탄했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점점 커지는 꿀밤을 애써 주머니 속에 밀어 넣고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매콤한 말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운 타령 그만하고 그 시간에 집중해서 연습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 끝에 혼자 웃음이 피식 났다.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개구리가 잘도 떠드는구나 싶어서. 과거의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결과는 마음 같지 않을까?‘ 억울한 마음이었다. 남들은 술술 잘 풀리는데 나만 유독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불운으로 퉁 쳐 버리면 죄책감에서 빠져나오기 쉬웠다. 재능도, 실력도, 뒷배도 없는 내가 가진 카드는 ’노력‘ 뿐이었다. 그 시절 나를 지금 돌아보면 실력을 쌓고 성장하는 자체보다 ’열심히 하는 나‘에 취해있었다. 매일 포기하고 싶어도 다른 차선책을 몰라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책을 내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들은 글을 잘 써서 책을 내게 된다는데 나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밥벌이를 위해 남의 말이 될 글을 쓰면서 살긴 했는데 정작 내 머릿속 생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지 캄캄했다. 책은 어떻게 내는지 몰라서 일단 책을 읽었다. 내가 내고 싶은 여행 에세이 분야 책을 읽다가, 비슷하게 흉내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근데 도통 나아지는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여행 에세이 붐은 서서히 저물었고, 여행 에세이를 쓸만한 대단한 경험이나 놀라운 시각도 없었다. 방향을 틀어, 그냥 좋아하는 것에 대해 주절주절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 헤맸다. 다시 책을 펴 들었다. 출간에 관한 책, 글쓰기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다시 글을 썼다. 기다리는 사람도, 시킨 사람도 없는 데도 썼다. 쓰기 싫어도 쓰고, 쓸 말이 없어도 썼다. 출근 2시간 전 사무실 근처 카페에 앉아 쓰고, 자다가도 일어나 노트북을 켜서 썼다. 어느새 버튼을 누르면 글이 튀어나오는 <글 자동판매기>가 됐다.
미용 분야와 달리 자격증 없이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내게 행운이었다. 연습하듯 매일 쓰던 글이 쌓여 결국 기회가 왔다. 출간 제안이 왔고, 상도 받았다. 지루한 ’연습 시간‘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열심에만 취해 징징거렸던 시간은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미련스럽게 연습한 시간이 나를 결과에 데려다 놓았다.
감정을 지우면 결과가 남는다. ’열심’이 주관적인 기분이라면 ‘연습’은 객관적인 숫자다. 2주 후 시험장에 선 학생은 떨릴지 모른다. 지루하고 막막한 연습실에서의 시간을 견딘 손은 흔들리지 않는다. 납작해진 기분이 아니라 연습으로 단련된 손을 믿으면 합격증은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