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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24. 2018

이 세상에 망한 여행은 없다

마드리드행 야간열차 티켓 증발(?) 사건


지난날, 내 여행의 날들은 되짚어 보면 즐거움 반, 삽질 반이다. 즐거움만 가득했다면 아마 이런 글 따위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가 있어 여행이 더 특별해졌고, 여행력(旅行力)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됐다. 삽질, 그 순간은 잠시 쓰라렸지만 뼛속 깊은 인생의 교훈을 남겼다. 여행자를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삽질이라는 변수 앞에 자유여행 초심자들이 덜 당황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난날 내 여행 흑역사를 공개한다.     



때는 2016년. 10년 만의 다시 떠난 유럽 여행에 한창 취해 있던 시기였다. 런던 -> 에든버러-> 파로 -> 리스본 -> 포르투 여행을 마치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스페인 땅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나와 일행은 리스본으로 다시 돌아와 야간기차로 마드리드로 갈 계획을 짜고 야무지게 한국에서부터 미리 예매를 해왔던 터였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기분 좋게 마치고 슬슬 기차역으로 향했다.     


사실 이 유럽 여행은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직관을 하고 싶다 “는 열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달의 여행 중 이미 여행 절반을 넘겨 몸도 마음도 슬슬 지쳐갔지만 목적의 땅, 마드리드로 가는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리스본에서 밤 21시 34분에 떠난 열차는 밤새 달려 다음날 오전 8시 40분에 날 마드리드에 데려다줄 것이다. 신나게 매표소로 달려가 창구 직원에게 여권과 함께 예매 후 캡처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안쪽 사무실로 가라고 한다. 기분 좋지 않은 예감이 우리를 감쌌다.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야간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기차역 화장실에서 씻고 잘 준비를 하려고 좀 일찍 도착했었다. 아직 출발까지 시간이 좀 있었으므로 뭐 큰일이 있겠냐는 밑도 끝도 없는 긍정회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푸근한 인상의 직원은 이리저리 컴퓨터를 뒤적이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더니 전화를 끊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내린다.      


”예약에 뭔가 문제가 있어. 너희의 티켓은 발권되지 않았어. “     


”엥?? 뭐?? 이것 봐 우리는 예약을 완료했다고!!! 이건 결제가 완료됐다는 증거잖아 “    

한국에서부터 유독 애를 먹인 페이팔의 결제 완료 캡처 화면을 보여줬다.      


“흠... 이걸로는 예약 번호를 알 수 없어.

예약이 완료됐다면 예약 번호가 포함된 예약 확정 메일이 왔을 거야. 그걸 보여줘?”    


“물론이지”    


한치의 의심도 없었기에 당당하게 대답한 후 휴대전화로 메일을 뒤지던 지인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한다. 함께 여행을 여러 번 다닌 우리는 암묵적으로 여행의 역할을 분담하곤 했다. 지도 보기에 능숙한 나는 일정 짜기와 목적지 및 식당 찾기를 담당했고 시간과 수에 밝은 지인은 예약과 정산을 담당했다. 그녀의 메일 어디를 뒤져 봐도 페이팔에서 온 결제 완료 메일은 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코레일 같은 포르투갈 철도청(CP)으로부터 발송된 메일은 하나도 없었다. 예약 확정 메일이 오지 않은 것이다.

아... 망할 페이팔 놈들!!     


아마 전산상의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카드사의 결제는 됐는데 그 결제 내역이 철도회사로 넘어가지 못한 것 같다. 그 시시비비를 따지려면 시간과 노력이 든다. 게다가 여기는 한국말도 안통하는 이국 땅이다. 뭐가 됐든 그 상황에서는 확인을 하지 않은 우리의 착오가 확실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빠른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다시 직원에게 지금 바로 티켓을 살 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평일이었기 때문에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원래 예약한 가격에 비해 월등히 비쌌다. 이 티켓이 아니면 우리의 다음 일정은 도미노로 밀려 엉망이 된다. 찍지이이지익~~ 기차표가 기계에서 인쇄될 때 나는 소리가 우리의 여행부심을 할퀴는 소리처럼 날카롭게 들린다. 지출하지 않아도 될 돈이 나가니 속이 쓰리지만 대안은 없다고 두 명의 가난한 여행자가 서로를 다독였다.     

 

일찍 예매할수록 싸다는 조언에 따라 미리 한국에서 예약했다. 하지만 예약 확정 메일을 확인하지 않은 사소한 실수가 큰 결과를 낳았다. 폭풍 같은 시간이 보내고 나니 4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근처 마트에서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슈퍼복(현지 맥주)을 사와 마시며 생각 했다. 만약 기차 출발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도착했다면 우린 오늘 밤 이 기차역 노숙자들 틈바구니에서 노숙을 해야 했겠지? 껄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졌는데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던 지인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철두철미한 성격의 지인은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다니”라는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분위기였다. 자기가 확인 안 한 거니 이 티켓 값은 자기 사비에서 내겠다고 한다. 나는 남은 맥주를 탈탈 털어 마신 후 말했다. ‘여행’이라는 한 배를 탄 이상 모든 일의 책임은 공동으로 나눠지는 거니 자책하지 말라고. 누가 크게 다치거나 범죄에 연루된 것도 아닌 이 정도 사고는 여행에서 애교 수준이라고 그녀를 다독였다. 시련은 사람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이 사건으로 우리의 여행은 좀 달라졌다. 무엇이든 서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차근차근 플랜 B를 실행한다. 그래서 망한 여행은 없다. 다만 교훈을 남긴 여행이 있을 뿐이다.        


 - 미리 예약했다면 꼭 예약 확정 메일(연락)을 확인할 것
 (카드사의 결제 완료 메일 X, 예약지에서 발송한 예약 번호가 포함된 메일 O)

- 메일함만 믿지 말고 캡처본, 종이 프린트 등을 일행이 나눠 소지할 것

- 처음 가는 곳은 너무 촉박하게 도착하지 않도록 할 것    

-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귀찮아도 크로스 체크가 답

- 무엇보다 변수가 생기면 네 탓 내 탓 따질 시간에 빨리 대안을 찾아 행동으로 옮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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