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런던(London)
백조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기만 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끊임없이 헤엄치고 있다며
'노력'을 말하고 싶을 때 인용되는 대상 아닙니까?
생상(Saint Saens)의 백조(The swan)는 어떻고요.
그만한 수면곡 찾기도 힘듭니다.
없던 평화도 찾아올 것 같고요,
가슴이 녹아버릴 것 같은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하이드파크에서 산산조각 났어요.
물 위를 유유히 떠가는 백조는 분명 로맨틱했어요.
여기는 과연 '고급진' 런던이 맞더라니까요.
그런데 물 밖을 나온 백조에
저는 식겁했습니다.
세렝게티에서 펠리컨이 먹을 거 달라고 다가올 땐
허걱하면서도
'아프리카니까 그럴 수 있지' 했는데
이건 뭐,
교양 있는 동화 속 주인공인 줄 알았던 하얀 생명체가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어요.
키도 내 허리에 가깝고
먹을 걸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에
무서웠다니까요.
제가 덜 자연친화적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가까이 다가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말이죠.
겉보기완 달라.
겪어보기 전엔 몰라.
사람이든 일이든 다 마찬가지.
사실 백조가 나한테 뭐 어쨌다고 배신감 운운하나요?
다 내가 그려놓은 이미지였으면서 말이죠.
보이는 대로 믿는 것도 필요해요.
속을 알아야 하니 은근히 곁눈질해봐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세상이 너무 차가운 것 같아요.
페이스 밸류(Face value)가 진심일 때도 있잖아요.
좋고 싫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저 같은 사람은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 그저 대단하기만 합니다.
뭐, 그렇게 되고 싶다는 얘긴 아니고요.
백조가 저에게 다가오지만 않았다면
백조에 대한 환상은 아직 그대로였을 거예요.
때론 일정한 간격이 서로를 향한 오작교가 되기도 하죠.
너무 멀리서 눈치 볼 것도 없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 애쓰지도 않아야겠어요.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잘되면 좋은 거고
다쳐도 그럴만한 결과였겠거니
생각하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