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길을 걷다 고양이와 싸움이 붙었다
먼저 뚫어져라 쳐다본 건 그쪽이었고
나는 맞장구를 쳐준 것뿐이었다
인간끼리의 그것과는 룰이 달랐다
눈은 깜빡여도 되고 먼저 눈을 피하는 쪽이 패자다
물론 서로 협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싸움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그럼 나는 자신이 있었다
상대의 눈은 계속 나를 뚫으려 했지만
간지러운 봄바람에 쉬이 깜빡거리는 내 눈은 약점이 아니라고 하니
난 언제까지고 녀석을 째려보기만 하면 됐다
나는 이기고 싶었다
지난 꿈에 연이어 나타난 적들에게 시원스레 내뱉지 못하고 번번이 잠에서 깨버렸던 분함이
갑자기 살아났기 때문이다
내 너를 다시 꿈에서 만난다면 그땐 당당히 승전고를 울리리
그렇게 나는 예비전투가 필요했고
이 길고양이는 오늘 된통 잘못 걸렸다
[B]
그저 아파트 화단에서 일광욕을 하던 중이었다
저쪽에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감각은 아무 감정도 없이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놨다
시야에 인간이 잡혔다
그가 바라보길래
나도 계속 바라보았다
영문은 몰랐다
[A]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시비는 허상이었다
그때의 우리도 혹시 그랬을까
지나가며 훅 날려버릴 것들에 서로를 투영하고
필요치도 않은 의미 한 줌씩을 툭 던졌던 게 아니었을지
나는 승자가 아니었다
대치하며 서 있는 시간이 아까워
내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뒤돌아보지 않았기에
그의 시선이 얼마나 더 나를 따라왔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내 늦은 선택은 옳았을 터,
다시는 오해로 우두커니 멈추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