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 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삐삐 Mar 24. 2024

시비

[A]

길을 걷다 고양이와 싸움이 붙었다

먼저 뚫어져라 쳐다본 건 그쪽이었고

나는 맞장구를 쳐준 것뿐이었다


인간끼리의 그것과는 룰이 달랐다

눈은 깜빡여도 되고 먼저 눈을 피하는 쪽이 패자다

물론 서로 협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싸움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그럼 나는 자신이 있었다  
상대의 눈은 계속 나를 뚫으려 했지만

간지러운 봄바람에 쉬이 깜빡거리는 내 눈은 약점이 아니라고 하니 

난 언제까지고 녀석을 째려보기만 하면 됐다


나는 이기고 싶었다

지난 꿈에 연이어 나타난 적들에게 시원스레 내뱉지 못하고 번번이 잠에서 깨버렸던 분함이 

갑자기 살아났기 때문이다

내 너를 다시 꿈에서 만난다면 그땐 당당히 승전고를 울리리 

그렇게 나는 예비전투가 필요했고

이 길고양이는 오늘 된통 잘못 걸렸다


[B]

그저 아파트 화단에서 일광욕을 하던 중이었다

저쪽에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감각은 아무 감정도 없이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놨다

시야에 인간이 잡혔다

그가 바라보길래

나도 계속 바라보았다

영문은 몰랐다 


[A]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시비는 허상이었다

그때의 우리도 혹시 그랬을까

지나가며 훅 날려버릴 것들에 서로를 투영하고

필요치도 않은 의미 한 줌씩을 툭 던졌던 게 아니었을지


나는 승자가 아니었다

대치하며 서 있는 시간이 아까워 

내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뒤돌아보지 않았기에 

그의 시선이 얼마나 더 나를 따라왔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내 늦은 선택은 옳았을 터,

다시는 오해로 우두커니 멈추지 않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질긴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