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젓함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졌던 마음
나는 부모님이 맞벌이라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이모나 친척들이 나를 돌봐주긴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게 가는 아이가 나였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창문 밖이 어두워질 무렵에도
나는 교실 한켠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게 당연했기 때문에
그땐 그게 외로운 일인 줄 몰랐다.
가끔은 부모님 대신 다른 사람이 나를 데리러 왔다.
엄마의 직장 동료이거나, 이모였거나.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따라나섰다.
그게 내 일상이었으니까.
방학이면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이모가 일하는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고,
미용실에도 혼자 가서 머리를 잘랐다.
그게 슬픈 일인지 몰랐다.
그저 ‘나는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계곡에 간다고 했다.
“같이 갈래?”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그곳엔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이 있었고,
나만 혼자였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물을 달라 하거나,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부럽고,
조금은 부끄러웠다.
나를 본 어른들이 “세상에, 혼자서 다 하네” 하며 놀랐을 때
그 말이 이상하게 따갑게 들렸다.
그날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의젓한 게 이상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 아빠는 나를 찾느라 난리였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그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났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날의 공기를 잊지 못했다.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주던 세상의 말 속에서
나는 점점 더 “괜찮은 척”을 잘하게 되었다.
이제 돌아보면,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할 줄 몰랐던 아이였다.
그저 어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의젓한 연기를 하던 아이.
그래서인지 지금도
아이가 내게 보내는 작은 신호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아이가 손을 내밀면 잠시 멈춰 서는 법,
그 손을 잡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안다.
강한 척이 아니라, 다정함이 사람을 살린다는 걸.
그래서 내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혼자서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여서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 말 속에,
그때 말하지 못했던 어린 나의 마음까지 담아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