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속에서 피어나는 다정함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
아이가 울 때마다,
감정이 앞서서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향해 조용히 그 문장을 던진다.
“또 그랬구나. 또 나쁜 엄마가 됐구나.”
사실, 인정하기 싫지만
가끔은 아이의 존재가 너무나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하루의 모든 에너지가 아이에게 쏟아지는 느낌.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는 내 안의 ‘나’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용히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
생각할 틈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그 자리에 ‘엄마’만 남는다.
아이는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엄마, 이거 봐.”
“엄마, 이거 해줘.”
“엄마, 나 손 닦아줘.”
처음엔 웃으며 대답하지만,
열 번째쯤엔 숨이 막힌다.
그때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조용했으면 좋겠다.”
“그냥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곧이어 찾아오는 건
엄청난 죄책감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나는 엄마잖아.
내가 낳은 아이잖아.’
그 자책은 나를 더 작게 만든다.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그 후엔 아이 몰래 울고,
결국 스스로를 미워한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안다.
이 마음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모든 엄마는 사랑과 피로,
그 중간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다는 걸.
그 귀찮음 속에는
사랑이 지나치게 무겁게 내려앉은 흔적이 숨어 있다.
사랑은 가볍지 않다.
매일의 반복 속에서,
그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때로 벅차고,
숨이 막힐 만큼 완벽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저 웃는다.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엄마’라는 이유로.
나는 이제 조금씩 배운다.
사랑이 꼭 다정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때로는 귀찮음 속에서도 사랑이 있고,
불완전한 나를 용서하는 일도
사랑의 일부라는 걸.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다.
다만, 너무 인간적인 엄마일 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정하지 않아도
그냥 지금의 나로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조금은 믿어보고 싶다.
오늘도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 천천히 중얼거린다.
“괜찮아, 나쁜 엄마여도 괜찮아.
사랑은 원래 서툴고,
나는 그 서툰 사랑을 배우는 중이니까.”
사랑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버티는 마음 속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