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한마디에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요즘 아이가 친구를 밀거나 손이 먼저 나가는 행동이 조금 많아요.
감정이 올라오면 바로 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29개월.
언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순식간에 솟구치는 나이.
그런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아이에 대한 말이었지만
가장 먼저 무너진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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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먼저 흔들린 건, 내 마음이었다
‘폭력적’이라는 말은
아직 너무 작은 내 아이에게 붙기엔
너무 무겁고, 너무 차가운 단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어가 아이보다 더 깊게 찌른 대상은
바로 나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화를 많이 내서 아이가 배운 걸까?’
‘내가 무뚝뚝해서, 감정을 읽어주지 못해서 그럴까?’
나는 아이의 감정보다
내 불안을 먼저 들여다보는 엄마였다.
그게 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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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슨 일 있었어?” 그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이 얼굴을 보자마자 묻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내 감정이 먼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왜 그랬어”
“그러면 안 되지”
이 말들이 먼저 입안에서 맴돌았다.
나는 아이보다
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엄마였다.
그 사실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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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월, 아이는 감정을 언어로 말하지 못한다
집에 와서 씻기려는데
아이가 갑자기 툭 던지듯 말했다.
“친구 밀었어.”
“장난감 빼앗았어.”
말은 짧고 서툴렀지만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너무 선명했다.
억울함. 화남.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몸으로 표현한 감정.
29개월 아이에게 ‘폭력적’이라는 말은
너무 큰 오해였다.
그저
감정이 폭발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단순한 사실을
왜 이렇게 크게 확대해서 받아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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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문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화났구나. 그래서 밀었구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순간적으로 풀렸다.
엄마가 혼내는 대신
이해해줬다는 느낌이 전달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오늘
아이의 말보다
선생님의 말에 더 크게 흔들렸다.
아이가 아닌
나의 상처와 불안이 먼저 반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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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아직 어린 아이라 그렇다
29개월,
아이에게는
감정이 올라오면 손이 나가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말보다 몸이 빠르고,
감정보다 행동이 먼저다.
이 나이의 아이는
배려를 배우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런데 나는
그 배우는 과정을
‘문제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그저 성장의 일부일 뿐인데.
나는 아이의 행동을 보기보다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내 두려움을 먼저 봤다.
그게 오늘 가장 큰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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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감정을 배우는 엄마다
아이는 여전히 나를 찾고,
여전히 내 품 안에서 잠들고,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른다.
아이는
내가 완벽한 엄마여서 사랑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냥 엄마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 사실이 오늘 나를 살렸다.
나는 매일 무너지고,
다시 아이 앞에서 일어서는 사람이다.
서툴고, 흔들리고,
그래도 사랑을 배우는 사람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니까 괜찮은 게 아니라,
나도 배우는 중이기 때문에 괜찮다.
오늘 나는 깨달았다.
아이가 폭력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나는 아이의 감정보다
내 불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였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려고 한다.
“괜찮아.
엄마랑 같이 배우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