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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Feb 25. 2021

[내 생애 첫 오페라/비스트로 몽유병의 여인]

<몽유병의 여인 /  Ah! non credea mirarti>

몇 해 전, 대학 동아리 선배가 홍대에 이탈리안 비스트로를 냈습니다. 독문과를 졸업하고 아내와 함께 유학을 떠났던 선배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양반이라 이렇다 할 직장도 저렇다 할 직업도 없었지만 늘 잘 먹고 잘 살았죠. 아, 한때는 해외의 유명한 슬리퍼 제품을 수입하는 일도 했었는데 그때도 특이하게 열한 달 열심히 일하고 일 년에 한 달은 온 직원이 휴가처럼 사용했다고 들었네요. 어쨌든 그 선배가 지은 가게의 이름은 ‘La sonnambula', 이름을 듣자마자 모두 '무슨 뜻이야?' 보다 먼저 나온 말은 '발음이 뭐 이래? 존남불라?' 였어요. 네, 이탈리아어로는 라 존남불라, 해석하자면 몽유병의 여인이었습니다. 유럽 현지에서 본 수많은 오페라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그는 이유를 댔어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벨리니는 로시니, 도니제티와 더불어 ‘벨칸토 오페라의 3대 작곡가’에 속하는데요. ‘벨칸토’란, bel(beautiful)+canto(song) 즉 아름다운 노래를 뜻해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의한 창법을 말하는데 17세기 중엽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이기도 합니다.

    


오페라 <La sonnambula(몽유병의 여인)>은 제목 그대로 몽유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 등장하고, 그 몽유병으로 인해 벌어지는 촌극을 다룬 작품이에요. 소박한 이야기의 총 2막짜리 짧은 오페라에 ‘펠리체 로마니’의 시적인 가사와 벨리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더해져 벨리니의 대표작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의 대표작이 되었죠. 인물 관계도는 여느 작품보다 단순해요. 몽유병을 앓고 있는 여주인공 ‘아미나’, 아미나의 약혼자 ‘엘비노’, 혼자서 엘비노를 좋아하고 있는 마을 여인숙 주인 ‘리자’, 리자를 사랑하는 마을 청년 ‘알레시오’ 그리고 고아였던 아미나를 거둬 키운 양어머니 ‘테레자’와 이방인 ‘로돌포’ 정도까지만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1막이 시작되면 스위스 작은 시골마을의 광장, 마을의 최고 미녀 아미나와 지주인 엘비노의 약혼식이 있는 날인데요. 모두가 축복하는 이 날, 엘비노에게 마음을 품었던 리자만이 슬퍼하고 있는 가운데 눈치 없는 마을 청년 알레시오가 나타나 추근거리지만 이 둘을 제외하고는 날씨마저 아름다운 날입니다. 두 사람의 맹세와 마을 사람들의 축복으로 약혼식이 마무리되려는 찰나, 마을에는 ‘로돌포’라는 이방인이 나타났어요. 두 명의 기병과 함께 나타나는 걸 보니 신분이 높은 사람일 테고, 갈 길이 멀어 보이자 여인숙 주인인 리자는 직업 정신을 발휘해 하룻밤 묵고 가라 합니다. 마을을 둘러보던 로돌포는 약혼식이 치러지는 중이었던 걸 알고는 아미나를 아름다운 신부라고 칭찬하는데, 이 칭찬에 리자는 질투가 나고 엘비노는 불편해져요. 이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엘비노가 로돌포에게 어디에서 온 누구냐고 묻자 로돌포는 자신이 어렸을 때 백작의 성에서 살았다고, 그 백작님이 자신을 참 아껴주셨다고 대답합니다. 해가 저물어 로돌포가 여인숙으로 가려하자 마을 사람들은 곧 유령이 나타날 거라고 말해줘요. 밤마다 하얀 옷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트린 유령이 마을을 떠돌아다닌다고 알려주지만 로돌포는 믿지 않고 여인숙으로 향합니다.     


1막 2장은 여인숙에 있는 로돌포의 방입니다. 로돌포는 낮에 보았던 마을,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흡족해하고 있어요. 이때 리자가 들어오면서 로돌포에게 ‘백작님’ 하고 부르는데요. 네, 맞습니다. 로돌포는 몇 해전 죽은 백작의 아들이었던 거예요. 그 시대의 백작들이 다 그랬던 건지, 오페라 속의 백작들만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로돌포 백작도 바람기가 다분해 리자를 유혹하기 시작하죠. 분위기가 무르익을 찰나, 창문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 리자는 얼른 몸을 숨기는데 하얀 잠옷을 입고 무언가에 홀린 듯 방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은 바로 엘비노의 신부가 될 아미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유령이라고 했던 존재의 정체도 밤마다 떠돌아다니던 아미나였던 거예요. 아미나는 잠에 취해 로돌포를 엘비노라 부르며 안겨요. 몰래 숨어서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리자는 놀라 방에서 빠져나가고, 로돌포는 오해받을 상황이 두려워 아미나를 두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하필 이때 로돌포가 백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조용히 인사를 하러 찾아와 있었습니다. 정황상 곤란해진 로돌포는 창문으로 빠져나갔지만 마을 사람들이 방 문을 열었을 때는 잠든 아미나만 남아 있었으니 모두 당황할 수밖에요.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아미노가 잠에서 깨어나는데 아무것도 몰라요. 나는 누구? 왜 지금 여기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아미노에게 엘비노는 그저 분노할 뿐이고 양어머니인 테레자만이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며 감싸줍니다.     


2막이 시작되면 마을에서 성으로 향하는 숲 속인데요. 마을 사람들은 분명히 아미나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며 로돌포 백작에게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중이었지만 엘비노는 로돌포의 말을 믿을 생각이 없어요. 엘비노는 아미나가 로돌포 백작의 유혹에 넘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리자를 찾아가 청혼을 합니다. 그동안 티도 내지 못하고 엘비노를 흠모했던 리자는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때 로돌포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과 엘비노에게 ‘몽유병’에 대해 알려줍니다. 들어본 적도 없는 ‘몽유병’ 이야기에 마을 사람들도 엘비노도 어리둥절할 수밖에요. 테레자가 나타나 아미나가 겨우 잠들었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잠들었다는 아미나가 물방앗간의 창문으로 나오더니 지붕 위를 위태롭게 걷기 시작한 거예요.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태연하게 걸으며 그녀는 노래를 불러요.     


Ah! non credea mirarti                 

si presto estinto, o fior                   

passasti al par d'amore                   

che un giorno solo, che un giorno sol durò          

che un giorno solo, ah sol durò           

                  

 아! 미처 몰랐구나, 향기로운 꽃이여

네가 이렇게 빨리 시들 줄은

단 하루 만에 끝나버린 사랑처럼

너는 시들어 버렸구나

단 하루 만에     



결국 엘비노는 아미나의 결백을 인정하고, 아직도 꿈을 꾸는 상태로 행복해하는 아미나를 부드럽게 깨워 당장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교회로 향하며 막을 내립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 공연을 실제 공연장에서 본 적은 없어요. 벨리니의 작품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가게 이름을 <몽유병의 여인>이라고 지은 그 선배의 이야기에 영상으로 찾아보았을 뿐입니다. 언젠가는 저도 꼭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 이 오페라의 진수를 맛보고 싶어요. 아! <라 존남불라>라는 선배의 가게는 안타깝게도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홍대에 가게를 열기 전 익산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를 했었는데 그때 가게 이름은 <I puritani(청교도)>였어요. 이 이름 또한 벨리니의 대표작이죠. 혹시라도 자신이 세 번째 가게를 차리게 된다면, <Norma(노르마)>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했으니 혹시 지나다 ‘노르마’라는 이름의 비스트로가 있다면 한 번 눈여겨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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