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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Aug 10. 2021

저는 골프 안 하는데요?

지금은 합니다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 있었다. "골프 치시죠? 언제 한번 라운딩 잡아요!"

골프를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라운딩을 잡자니! 이럴 때 나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저...... 골프 안 하는데요?"


아니 사회생활하면서 골프를 안 하면 어떡하냐, 이제껏 뭐하느라 골프도 안 배웠느냐, 골프가 얼마나 재밌는데 지금이라도 꼭 시작해라...... 이미 골프의 맛에 푹 빠진 그들은 아직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달콤한 이유를 들었다. 골프의 '골'자도 모르던 아니, 골프공을 던지는 건지 차는 건지 치는 건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내가 골린이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의 말은 모두 옳았다.


먼저 일적으로 만난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안개도 다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촉촉한 잔디를 밟는 그 느낌이 얼마나 설레는지 느껴봐야 한다고. 조용한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고, 잔디를 밟는 걸음걸음의 느낌도 경험해보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다고. 일주일 동안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였던 스트레스가 힘찬 스윙에 뻥! 하고 날아가는 것 같은 시원함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또 어떤 이는 지방 곳곳에 있는 명문 골프장을 다니면서 근처의 맛집을 찾아가는 식도락 여행이 정말 행복하다며 고기가 맛있는 지역, 백숙이 끝내주는 곳, 한정식이나 소박한 시골밥상이 유명한 식당 등...... 전국의 맛집을 섭렵할 수 있어서 골프는 두 배 세 배 재밌다고 했다.

친한 친구의 대답은 보다 현실적이었다. "우리 나이에 그렇게 짧은 치마 입고 돌아다니면 주책이라 그러지? 골프장에서는 다 짧게 입으니까 괜찮아. 이 나이에 자신 있게 짧은 치마 입을 수 있는 데가 골프장 밖에 없다고." (얘기를 듣는 동안은 엄청 웃었지만 헤어지고 난 후 생각해보니, 평소에 입는 스커트의 길이보다 10cm 이상은 짧고, 말도 안 되게 타이트한 골프웨어를 지금의 나도 입고 있으니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골프복이 아니라면 절대 시도조차 하지 않을 스타일이기는 하다. '이 맛에 골프 친다' 이 대답 역시 맞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골프를 시작하고 나서야, 골프가 왜 좋은지 100가지 이유를 쏟아냈던 한 선배는 "나에게 골프는 노후 대비야. 내가 애가 있니, 뭐가 있니. 나이 들어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겠어. 게다가 내가 골프를 시작하고 나니까 결국은 골프 치는 친구들끼리 만나. 맨날 언제 술 한 잔 하자, 밥 한 번 먹자...... 빈 약속만 주고받았다가 지금은 라운딩을 잡으면 되니까 빈말이 아닌 게 되더라고. 우리 늙어서도 이렇게 골프 치러 다니면서 놀자." 가장 공감했던 이유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안 건너는 성격의 내가,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옆에 꽹과리가 지나가도 전혀 모른다는 내가 결국은 골프를 시작했다. 그동안 '골프'에 대해 갖고 있던 여러 생각들(그러니까...... 골프를 칠 수 있다는 이유가 일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싫었고, 불필요한 라운딩 초대를 받는 것도 싫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는 집 앞 슈퍼마켓도 운전해서 갈 정도로 몸을 쓰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다.)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골프를 시작할 수 있었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때마침 코로나19로 많은 일상이 정지상태가 되었으며,  친구들 모임의 마지막이 라운딩 약속으로 끝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골프인구가 늘어나면서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골프를 다루는 콘텐츠가 많아졌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골프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두근두근한 설렘! 아, 얼마나 즐거운 중년이란 말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세상의 골린이들은 어떻게, 무엇에 이끌려, 어떤 매력에 빠져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골프 #골린이 #어쩌다골프 #골프에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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